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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8, 할로윈 당일 풍경, 하이드 파크, 3막의 마지막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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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 당일 풍경


마트에서 팔던 컵케이크.

난생 처음으로 컵케이크 먹어봤는데 아...진짜 혀가 알알할 정도로 달아...그저 달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충격적으로 달았음.

앞으로는 먹을 일 없을 컵케이크


두 개 샀는데 둘이서 하나를 이틀에 나눠 먹고 나머지 하나는 결국 버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무섭게(?) 분장한 꼬맹이들이 남의 집 앞에서 'Trick or treat!' 하는 모습

사탕 바구니 들고 아장아장 걸어다니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사탕 받아가는 모습은 진짜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웠다.


동네에 제법 애들이 많이 돌아다녔는데 가까이서 사진 찍을 수가 없어서 참 많이 아쉬웠음. 엄마 손 붙잡고 아장아장 걷는 마녀, 베트맨, 고스트, 조커 등등 귀엽고 깜찍한 애들 진짜 많았는데. 





집 앞에 으시시(?)한 할로윈 장식해놓은 집들





우연히도 할로윈 다음 날 완전 짙게 내려앉은 안개로 으스스한 분위기가 연출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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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파크


주말에 하이드 파크로 나들이







100년은 넘은 것 같아보이던 엄청나게 큰 나무

이 나무 아래에만 들어가도 작은 숲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이드 파크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갤러리랑 붙어있는 레스토랑 매거진(Magazine)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곳

이렇게 잘나가면서 뽑아주지도 않고...





또 다른 서펜타인 갤러리

이건 진짜 숲 속에 있는 느낌이 나는 곳.

옛날에 티룸이었던 것을 갤러리로 리모델링 한 것이라고 한다. 

영국은 정말 옛날 몇 백년 전에는 뭐였던 곳인데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리모델링한 거얌-이라는 설명이 쓰여있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 대학교들은 내부는 그대로 두고 외관만 리모델링 하는데. 





요기에 히틀러가 그린 그림이 있었음. 

많이들 알다시피 히틀러는 미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는데 

그 때 그 대학에서 히틀러를 합격시켜 줬더라면 세계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하고 뭐 그런 쓰잘때기 없는 잡담을 chan이랑 이 그림 앞에서 했었다.





컬러풀한 양철통과 심플한 단어들의 조합 

재밌고 신선했던 전시




동네 데이트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일도 없고 그냥 하루종일 폐인처럼 집에서 씻지도 말고 게임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3번이나 싸우다가 죽음. 

짜증내다가 결국 씻고 나와서 동네 코스타에 가서 와우를 했다. 

여기도 크리스마스 상품들이 벌써 나왔더만-





코스타에 있다가 배고파져서 바로 옆 Franco Manca라는 피자집으로 이동-


런던 여기저기에 있는 체인점인 이탈리안 피자집인데 싸고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인기가 좋은 곳.







메뉴 앞에서는 언제나 진지한 이 남자.




가격이 싸서(둘이서 음료 합해서 약 20,000원) 나는 피자가 작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커서 기분이 좋음-



결국 열심히 먹고도 남아서 집에 싸가지고 가는 즐거운 발걸음-

하루종일 비오다가 해 질때가 되니 해가 나서(?) 오묘한 하늘을 선사해준 날

상쾌한 공기도 좋고 게임도 실컷했고 맛있는 것도 먹었으니

집구석에서 폐인처럼 있는 것 보다는 훨씬 나았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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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의 마지막 장


chan과 나 

우리는 (그 전에 있던 각자의 인생은 나중에 각자 알아서 생각하고) 우리가


사귀었던 기간을 1막

결혼을 2막

유학을 3막


이렇게 나누었는데 

그 3막의 마지막 장이 다가왔다. 


짧다면 짧았던 1년 2개월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11월 말(혹은 12월 초)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졸업이 점점 가까워지면서부터 건강하지 못한 마음으로는 견뎌내기 힘든 불확실성의 끝자락을 매일 오가며 힘들어 했었다. 덕분에 위궤양도 재발했고 우울증도 살짝 왔었는데. 그럼에도 다 접고 돌아가는 것을 선뜻 결정하지 못했었는데. 드디어 둘이 같이 한 마음으로 결정으로 내렸고 우리는 예정보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비자법이 바뀐 것이 가장 컸다. 지난 번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취업 자체도 너무 어려워졌고 또 이제는 취업 비자로 5년 이상 거주하더라도 영주권을 받을 수 없어졌다는 얘기까지 추가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뭔가 이제 아둥바둥할 필요 없고 여기서 비싼 집세 내면서 1월까지 있어야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싶은 마음이 들면서 '돌아가자!' 라고 결정했다.


아마도 11월 말에 갈 것 같은데 로에니 때문에 아직 확정은 못했다. 역시나 로에니가 뭐 이것저것 해야할 것이 있는데 그게 2~3주가 걸린다고 하여 어쩌면 12월 초가 될지도. 


그런데 오늘 다시 알아보니까 영주권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고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최소 연봉이 오른 것이더라. 그런데도 한국행을 결정한 마음은 요만큼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이 곳에서 마음이 뜬 모양이다. 


한창 우울증을 겪을 때는 우리의 의지가 아닌데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면 우리가 너무 루저같이 느껴질 것 같고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며 '너네 실패했다며' 라고 수군거리고 '그럴 줄 알았다 너네는 앞으로도 안 될거야(이건 아마도 그 인간이 할 것 같은 말)' 라는 말을 실컷 들을 것 같아 두려웠었는데 


발버둥치지 않고 숨만 쉬면서 가만히 휴식을 취하자는 전략이 먹혀들었는지 몇 주 지나니까 조금씩 건강한 마음을 되찾아서 한국행이 곧 우리의 실패라는 생각은 더이상 들지 않는다. 물론 약갼의 미련과 씁쓸함은 남지만. 한국행이 오히려 기대되는 점도 있고 누군가가 손가락질 하더라도(그렇게 말할 사람은 아마 그 인간뿐일 듯 하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후회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도 생겼다. 그 인간은 또 조롱하겠지만. 


여튼

예정보다 빠른 한국행에 둘 모두 동의한 날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서 정말 오랜만에 잭콕을 마시면서


런던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끝이구나

이제 또 떠나는구나

우리는 또 떠나네

조금 더 있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이르게 안녕이네

이 곳이 또 그리워 지겠지?

무엇보다도 그 푸르던 공원과 사람을 먼저 보내주던 차들과 화려하게 온 도시가 축제인듯한 크리스마스가-

힘든 순간도 정말 많았는데 그런 것은 이미 반쯤 날아가 버렸나보다.


떠나기로 결심하고 나니 벌써부터 그리운 런던이다.

나는 항상 이별에 애틋하고 힘들어하는 인간이었어서 또 이렇게 긴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