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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4,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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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침부터 나와서 카페에 왔다. 읽고있던 김영하의 소설과 어제 도착한 하루키씨 단편이 실린 뉴요커 한 권과 맥북에어를 들고 나왔는데 와서 세 시간 넘게 김영하의 소설만 보다가 결국 끝까지 읽었다. 예전에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퀴즈쇼를 봤을 땐 흥미로운 얘기고 잘 읽히지만 그렇게 대단한 작가인가 싶었는데 이번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을 때는 우와 글을 이렇게 잘 쓴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얘기를 썼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뀐 것인지 그의 소설이 많이 정말 많이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한국 소설가들의 글을 읽을 때는 잘 모르는 아름다운 국어를 사용한 유려한 문장을 읽을 때 특히 기분이 좋다. 아 나는 정말 한국어를 잘 모르는구나 싶기도 하고.

 

'봄은 왔으나 한뎃잠을 잘 수 있을만큼 따뜻하지는 않았다.'

'거센 살의인지 정염인지 스스로도 구별할 수 없었다.'

'금희는 그의 시선을 외면하고 고개를 외로 꼬고 있었다.'

 

'한뎃잠'이나 '외로'같은 말은 거의 처음 보는 단어고 '정염'은 뭔지 대충 알 것 같으나 확실이 모르는 단어다. 

 

아무튼 이 소설을 다 읽으니 바로 이어서 또 다른 이야기를 접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져버렸다. 맥북에어를 가지고 온 수고로움을 보상할 수 있도록 블로그를 쓸 맘이 들었다. 수고로움으로 치면 뉴요커 한 권과 맥북에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만 사용한다면 에어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하나도 중요하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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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하다. 건강하다. 별 문제 없다는 말을 꼭 서로에게 전해야할 것 같은 요즘이라 전해본다. 

무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내가 다니던 동네 요가원도 일주일간 휴원을 했고 나는 가만히 집에만 있기가 찌뿌둥하여 거의 매일 마스크를 쓰고 손세정제를 챙겨 긴 산책을 나갔다. 

 

햇살 좋았던 날 홍제천

 

홍제천을 따라 걷다보면 오리들을 구경하는 맛이 쏠쏠하다. 짚뭉텅이 위에 몸을 최대한 낮추고 햇빛을 받으며 쉬는 무리가 있는가하면 수차례 물 속으로 직각으로 세운 몸을 반 정도 담궜다가 나와서 얼굴의 물을 털어내고 또 들어가고를 반복하며 먹이잡는 일에 열심일 때도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도 긴 산책을 나갔다.

이럴 때 정말 든든한 헌터부츠...너도 나랑 오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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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좋아졌어

 

며칠 전 저녁에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070도 아니고 늘 받아서 번호를 외고있던 어느 상조 회사 번호도 아니었고 제대로 된 오피스 번호같은 번호라서 이게 어딜까? 궁금해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전화면 분명 다시 할테지만 요즘 시기가 이렇다보니 혹시 동네 보건소에서 온 전화인가? 싶기도 했다. 어느 확진자의 동선에 내가 지나갔다는 걸 밝혀내곤 전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 번호만 넣고 검색을 해봤다. 

 

허경영 홍보 전화래.... ㅋㅋㅋㅋㅋㅋㅋ 

아 번호 검색만으로 이런 정보를 알게되다니 정말 세상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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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울프강

 

내 생일 쯤 다녀왔던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 

 

베이컨 샐러드,

포터 하우스 스테이크 - 사이드로 크림 스피니치, 매쉬드 포테이토, 그릴 아스파라거스,

티라미수와 차가 나오는 코스를 시켰다. 

 

샐러드는 그냥 그랬고...스테이크 곧 먹을 건데 통 베이컨이 나오는 샐러드는 실수였던 것 같다 ㅎㅎ 

스테이크는 진짜 맛있었고 사이드도 모두 곁들여 먹기에 좋았다. 

 

제일 좋았던 건 분위기였던 것 같다. 어두운 벽돌색 나무톤과 새하얀 테이블보와 전체적으로 중후하고 클래식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나이를 먹어가나보다 정말. 

 

13은...내 코트를 가져가고 준 번호...

 

 

시그니처인 포터 하우스 스테이크. 

chan의 강요로! 미디움 레어를 시켰지만...미디움을 시켰어도 정말 맛있었을 것 같다.

 

내가 집에서 포크로 대충 으깨 만드는 매쉬드 포테이토랑은 차원이 다른 진짜 매.쉬.드. 포테이토랑 크림 없이 버터랑만 오래동안 조리해서 크리미한 식감을 만들었다는 크림 스피니치. 난 둘 다 좋았는데 chan은 스피니치는 그저그랬다고. 

 

부탁해서 찍은 사진.

 

 

처음 스테이크가 나오면 이렇게 예쁘게 앞접시에 담아주신다. 이 다음부턴 알아서 덜어 먹으면서 접시는 핏물이 고이고 각종 사이드 메뉴가 뒤엉켜 엉망이되기에 첫 접시는 찍어서 남겨놔야지...

 

 

chan이 예약할 때 생일 메시지 넣어달라고 했더니 티라미수에 초 하나와 생일 축하 문구를 써줬다. 내 시선이 어딜 보는 건지 가늠이 안 되는구나. 사진 정말 잘 찍는 chan...

 

 

기념일에 다시 한 번 와도 좋을 것 같다.

근데 나 요즘 그걸 해보고 싶더라. 아침에 엄청 일찍 일어나서 신라호텔 조식 먹으러 가는 거. 두세 시간 수다떨고 배부르게 먹고 커피까지 먹고 헤어지는 그런 데이트. ㅎㅎ 

 

 

 

아무튼

다들 무탈하시길

얼른 이 시기를 이겨내고 지나가길. 

빨리 백신이 나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