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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60118, 다 사람 사는 곳인데도 다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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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사람 사는 곳인데도 다 달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 어떤 맥락에서 하는 말인 줄 알 것 같지만 듣기 싫은 말 중 하나다. 동의하지도 않는다. 그 정도 거리감을 두고 살아간다면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다'와 같은 말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북경에 오면서 더더욱 나는 '사람 다는 곳 다 똑같다'는 자세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나에게 서울과 런던은 너무 달랐고 런던과 북경은 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르다. 


예를 들자면, 


1. 북경 사람들은 촌스럽고 퉁명스럽고 지저분하다. 지난 번에 인터넷 기사가 집으로 왔는데 몸에서도 냄새가 나고 말을 하자 입냄새도 났다. 동네 마트를 가도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나고 택시를 타도 그렇다. 나는 아직 왕징 주변으로 벗어나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chan의 회사 근처는 우리동네보다 훨씬 더 지저분하고 한 겨울인데도 짧게 지나가는 어느 골목길에서는 항상 안 좋은 냄새가 난다고 했다. 거지 가족이 살고 있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코 푸는 아저씨도 봤다고..사람들의 태도에서도 세련됨이나 매너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표현이긴 한데, '촌스럽지만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도 있다.


반면에 런던 사람들은 세련되었고 유쾌하고 매너가 넘친다. 복잡한 길가에서, 마트 계산대 앞에서, 버스 정류장에서도 여유를 갖고 양보를 하고 먼저 가라는 제스처를 아주 멋지게 취해주는 동네 아저씨. 식당에서 주문할 메뉴 이름만 말해도 'Brilliant' 라고 엄지척! 해주면서 아무것도 아닌데 기분 좋게 해주는 금발의 빼빼마른 웨이터. 길을 건널 수 있나? 없나? 하면서 서있을 때 천천히 차를 세우며 밝게 웃어주는 버스기사 아저씨. 하지만 그 세련됨과 매너 속에 능구렁이처럼 외국인을 무시하고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2. 지하철을 타는 환경은 북경이 런던보다 훨씬 더 잘 되어 있다. 확실히 최근에 만든 거라서 그런지 플랫폼도 깔끔하고 스크린 도어도 있고. 런던에서는 외출해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면 까만 코딱지가 꼭 나왔는데 여기는 그런 건 없다. 근데 내가 주로 타는 14호선에서는 별로 느낀 적이 없는데 chan이 회사갈 때 타는 5호선은 우리나라 1호선 같은 냄새가 좀 난다고 하긴 하더라. 아 그리고 여기 지하철은 탈 때마다 가방 검사를 한다. 공항 검색대같이 검은 벨트 위에 가방 올려놓고 사람도 검색대를 지나가면 공안이 까만 스캔 도구로 스캔을 한 번 한다. 가방 안에 물병이나 스프레이같은 것이 있으면 꺼내서 보여달라고 한다. 처음인 신기하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했는데 이제는 뭐 그러려니.



3. (나한테는 정말 중요한)도시 미관


내가 살고 있는 왕징 기준으로 스카이 라인이 정말 높다. 내가 사는 아파트도 30층 정도 되는, 내 기준으로는 너무 높은 건물이고 주변 아파트나 호텔, 오피스 건물들도 대부분 다 비슷하다. 내가 사는 집 거실 창으로는 밤새 네온 사인이 번쩍거리는 큰 쇼핑몰과 널찍한 차도가 보인다. 이쁘다는 느낌은 별로 없고 차도도 너무 넓고 건물도 너무 크고 높아서 조금 황량한 느낌이 든다. 집에서 걸으면 10분 정도 걸리는 Soho 건물 근처에 가면 벤츠 건물도 있고 마소 건물도 멋지게 있어서 '우오오' 싶은 마음이 들긴 하는데 역시나 너무 커서 압도당하는 기분이다. 특히나 거주 환경에서는 편안하고 평화로운 마음이 드는 곳이 더 좋다.


도시 미관이라는 점에서 런던은 나에게 거의 완벽한 도시였다. 사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예쁜 도시이니..북경과 비교하겠다는 것 자체가 반칙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구체적으로 나열해보자면, 일단 센트럴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전반적으로 낮은 스카이 라인. 이게 사람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준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예술 작품처럼 예뻤고 도시 곳곳에 드넓은 공원은 정말이지 너무 사랑했었다. 예전 집 부엌 창가에서는 뒷 집의 뒷 마당이 보였다. 따듯한 햇살이 나는 날이면 잔디밭에 썬베드를 가져다 놓은 모습은 바라만 봐도 평화롭고 좋았다(질투도 났지만). 


4. 충격적인 건 여기서는 ATM에서 돈을 뽑아도 위조 지폐를 뽑을 수가 있단다. 그걸 들고 은행 창구에 가서 '너네 은행 ATM에서 돈을 뽑았는데 위조 지폐가 나왔다' 고 따져봤자 '그 위조 지폐가 니가 가져온 것이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억울한 소리만 듣게 된단다. 결국 위조 지폐 뽑으면 그냥 나만 재수 없는거고 어디 가서 보상도 못 받는다. 가끔 택시를 타고 잔돈 받을 때도 위조 지폐를 주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위조 지폐가 이렇게 일상 생활 속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5. 이건 내가 사는 지역 한정이겠지만, 삶의 다양성이 런던에서보다 훨씬 떨어진다.

내가 애용하는 '북키맘'이라는 네이버 카페가 있다. 북경에 와서 살고 있는 아줌마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인데 여기 정보가 없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정말 고급 정보들이다. 아무 곳이나 맛집이라고 하지 않고 정말 맛있는 집만 맛집이라고 해주는..그런 곳. 내 북경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서 확인하고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검색어를 넣고 찾아보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지난 번 몰스킨 매장도 여기 카페에 물어봤더니 알려줘서 다녀올 수 있었다. 관리자가 관리도 굉장히 철저하게 잘 하는 편이라서 벼룩시장같은 것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나도 여기 벼룩시장에서 공기 청정기, 테팔 믹서기, 전기 그릴판을 싼 값에 사서 잘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나에게는 너무 좋은 꼭 필요한 커뮤니티인데 이 곳에서 가끔 느낄 수 있는 소외감? 이질감? 같은 것이 있다. 이 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내가 사는 동네인 왕징에 거주하고 있고 대부분이 주재원 남편을 따라 나온 아이 엄마들이다. 이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나는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이다..라는 것이 조금 느껴질 때가 있다. 런던에 있을 때는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 스펙타클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라웠고 딱히 뭐가 주류다 싶은 그런 인생이 없었다. 너는 니 인생, 나는 내 인생, 우리 모두 다 다양하게 살아가는 거지 뭐, 하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여기는 대부분이 주재원의 아내, 아이를 가진 엄마. 이렇다 보니 오히려 한국보다도 획일화 되어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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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런던에 있을 때는 '아 런던, 날씨가 왜이래' '런던 사는 거 불편한 점도 많아요' '한국 사람들 살기에는 느리고 답답하죠' '생각보다 별로에요'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든 직접 사람을 만나서 대화할 때든. 근데 북경은 '북경 생각보다 살기 좋아요.' '살다보면 서울보다 좋은 것도 엄청 많아요' '외식 가격도 싸고 맛있는 것도 엄청 많아요' 와 같은 긍정적인 평가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 부분이 나는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실제로 내가 사는 곳을 평가할 때 그것을 내 주관 그대로 좋다 나쁘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상대방들이 먼저 하는 말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런던에 간다고 할 때는 부정적인 반응이 거의 없었다. 런던에서 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


'런던!! 꺄아- 런던 너무 좋잖아" '런던 가서 살면 진짜 좋겠다.' '런던 정말 이쁘네' '어때? 좋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말이었다. 그렇다보니 거기에 대고 매번 '응응 진짜 짱짱맨이야' 라고 하기가 어쩐지 좀 그랬다. 실제로 좋은데 그걸 그대로 말하면 너무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여기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나쁜 점들도 분명히 있는데 마냥 좋다고만 말할 수 없으니. '생각보다 별로인 점도 많아' 와 같은 부정적인 대답이 나오게 된다.


근데 북경에 올 때는 부정적인 반응이 반 이상이었다.

'북경? 중국? 중국을 간다고?' '거기 공기 완전 안 좋잖아' '거기 공중 화장실 잘못가면 어떤지 알아?' 등등


자꾸 이런 말을 듣다보면 '생각보다 살기 좋아' 라는 대답을 하게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

(비록 나는 아직까지는 '생각보다 좋다'라는 대답을 해본 적이 없지만)




6. 장바구니 물가

왕징에서 한국식으로 한국 제품만 사면서 살면 한국보다 생활비가 더 든다는 말을 듣고 좀 쫄았었는데 나는 한국 마트를 잘 안 가서 그런지(집에서 멀다) 확실히 장바구니 물가는 싸다. 서울보다 런던이 더 쌌고 런던보다도 여기가 조금 더 싸다. 특히 과일/야채는 정말 싸고 다양하다. 테스코처럼 싸면서도 손질이 예쁘게 되어 있지는 않지만..삼겹살은 어제 처음으로 집 앞 마트에서 사봤는데 런던보다 아주 약간 싼듯 했지만..가격 대비 고기 질은 사실 웨이트로즈 포크 벨리가 짱인듯 하다. 한 가지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건 우유. 우유가 비싸고 맛없다. 한국보다도 더 밍밍하고 맛이 없다. 좋은 우유는 좀 괜찮을까 싶어 런던 우유 값의 약 4배 정도 하는 우유를 사봤는데도 그냥 그랬다..가격은 천차만별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한국이랑 비슷하던지 조금 더 싸던지..확실한 건 런던의 2배는 넘으면서 맛도 없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수입 식품은 좀 비싸다.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 버터, 치즈, 이런 건 런던보다 비싸다.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살다보니 아무래도 '어머, 이건 거기보다 싸네?' '이건 왜이렇게 비싸? 니네가 감히 영국보다 더 비싸?' 하면서 일일이 비교하게 된다. 근데 비교하고 알고 있는 것 까지는 좋은데 그걸 가지고 '아 올리브 오일을 100위안이나 주고 사다니!' 하면서 마음 쓰려하면 그건 정말 내 손해지 싶다. 마음 상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살아야지.


번외

문 잡아주는 문화

여기도 딱히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는 문화가 있지는 않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전무했는데 여기서는 몇 번 정도는 문 잡아주는 배려를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역시나 한국에서는 문 잡아주고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는 몇 번 들어봤다.


런던도 그렇고 북경도 그렇고 재수 없으면 사기 당하고 바가지 쓸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울보다는 정직하고 조금 더 신뢰를 바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번에도 썼지만 여기 와서 택시를 몇 번을 탔지만 한 번도 바가지 쓴 적이 없다. 내릴 때 우물쭈물하면서 1원이라도 더 올라간 뒤에 미터기를 꺾는..그런 일도 겪어본 적이 없다. 조만간 바가지 씌우는 택시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확률적으로 보면 서울보다는 확실히 적은 것 같다. 내가 서울에서 택시를 탔을 때를 떠올려 보면 같은 한국 사람인데도 내가 길을 모르는 것 같아 보이면..정직하게 가주는 택시 기사보다 돌아서 가는 택시 기사가 더 많았던 기억이다. 


부동산에서도 느꼈다. 여기는 세입자가 부동산비를 내지 않는다. 월세가 낮은면 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내지 않는단다. 우리는 이 정보를 확실히 알고 간 것이 아니어서 부동산에 가서 집 알아보고 보증금 물어보고 하면서 '너네한테는 얼마를 줘야 하는데?' 라고 물었더니 안 줘도 된다고 하더라. 의사 소통이 확실하게 된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몇 번이나 '그럼 처음 세 달치 월세랑 보증금 얼마랑, 합해서 이만큼 가져오면 되는 거고, 너네한테 내는 돈은 없는거지?' 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근데 사실 이걸 묻기 전에 나는 '이걸 자꾸 물어보면 얘네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걸 알고 얼마라도 달라고 말 바꾸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별것 아닌 것 같고 어찌보면 당연한 듯 보이는 일이지만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감동을 받았었다.


낯선 사람과 계약을 할 때 어설프게 굴면 어떤 사기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분위기의 한국이 정말 범죄 중 사기 범죄가 1위를 하는 나라라는 것을. 조금 떨어져 보니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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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저냥 요즘 일상


chan이랑 회사갈 때 일어나서 아침 차려주고(보통은 그냥 요거트에 사과 반쪽) 점심을 싸준다. 장봐야할 것이 있으면 집 앞 마트에 다녀오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하루종일 집에서 보낸다. 집에서 일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하다보면 생각보다 하루가 빠르다. 커피보다 녹차를 자주 마신다. 좁은 주방에 나름 적응해서 대부분 식사는 집에서 해결한다. 그냥 단조롭다. 꽤나 오랫동안 너무 역동적이었기 때문에 최근에서야 겨우 찾게 된 이런 단조로움이 좋다. 


하지만 '이제 앞으로 몇 년은 이렇게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요즘엔 잘 모르겠다. 사람 일은 정말로 모르는 것. 다시 한 번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 그리고 그동안 프리랜서로 일했던 Farfetch일..2월 중순까지만 하고 더이상은 못하게 됐다. 이 소식을 듣고 정말 마음 쓰렸었다. 회사가 Home Office(영국의 이민국)의 감시 대상이 되면서 영국 여권이 있거나 영국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가 있는 사람들 말고는 모두 더이상 일할 수가 없어졌다고..너무 아쉬워서 며칠 굉장히 속상하고 chan에게 화도 내고 그랬는데 이젠 좀 괜찮아졌다. 어쩔 수 없지 뭐. 영국에서 내가 절박한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꿀 직장을 가질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이번 주에는 로엔을 찾아올 수 있다. 아 로엔 너무 보고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