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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니를 데려오던 날
전날 밤 북경 공항에서 로에니를 넘겨주고 받은 서류에 적힌 주소를 애플 맵으로 찾아봤는데 다행히 집 근처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나오긴 했는데 이 건물의 정확한 위치는 잘 검색이 되지 않아서 버스에서 내려서부터는 좀 헤매일 것이 분명하니 1시간 반 정도를 예상했다. 참..긍정적인 예상이었다는.
아침 9:30~11:30 사이에 오라고 해서 출근하는 chan보다도 먼저 집을 나섰다. 언제 어느때 인터넷이 안 될지 모르기 때문에 노선도 일일이 다 스크린샷으로 찍어놓고
집에 올 때는 택시를 타야할 것 같은데 기사가 우리집 주소를 잘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좌회전/우회전/직진 이것도 검색해서 스크린샷으로 준비했다.
중국와서 버스도 처음 타보고
낯선 동네에서 위치도 정확하게 모르는 곳을 찾아가야하고
또 처음으로 나 혼자서 택시를 타고 집까지 와야하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수월하게 흘러갈까?
버스 안은 괜찮을까? 너무 지저분하거나 냄새나거나 하면 어떡하지? 이상한 사람이 옆에 앉으면 어떡하지? 꽤 오래 가야하는데.
택시 기사가 집 근처에 와서 헤매면서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chan이 회사에서 야근하고 혼자 택시타고 올 때 매번 이랬다고 한다..북경은 너무 커서 택시 기사들이 모르는 곳이 많다고. 대략 동네까지는 오는데 집 앞에까지 가는 건 내가 알려줘야하는 경우가 많다고)
택시에서 갑자기 인터넷이 안 되면서 애플 맵이 안 되면 어떡하지?
택시 기사가 범죄자면 어떡하지?
로엔 캐리어를 안고 뛰어 내려야 하나?
이런 생각들로 밤에 잠까지 설쳤다.
아침에 버스타러 가는 길.
동네지만 처음 가보는 곳.
걱정했던 것 보다 버스는 나쁘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본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 중국 스케일.
맞는 정류장에 잘 내려서 이제는 동식물 검역 센터를 찾기만 하면 되는 상황.
이 때는 내가 1시간을 넘게 헤매일 줄 몰랐다.
이렇게 생긴 길을 계속 쭉쭉 걸었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찾는 곳은 안 보이고 길가다 한 두명을 붙잡고 물어봤는데 다들 모른다고 하고 나는 또 계속 정처없이 걸었다.
게다가 길은 점점 상막해졌다.
공장이나 창고 건물들이 양 옆으로 주욱 이어졌고 어떤 건물은 흉가처럼 비어있었으며 어떤 건물은 공사중이었다. 인도는 좁았고 걷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날씨는 흐리면서 제법 쌀쌀했고 한쪽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걸어야해서 장갑을 빼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떨어뜨렸는지 없어졌더라. 건물 하나하나가 너무 커서 내 걸음이 참 작게 느껴졌다. 이 춥고 상막한 길을 계속 걷다보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침 애플 맵에 '북경 동식물 검역 기관 어쩌구' 라는 건물명이 떠서 찾아가봤는데 입구부터 분위기가 이상했다. 너무 엄숙하고 뭔가 무서웠다.
위치도 서류에 적힌 것과는 조금 달라서 긴가민가했지만 달리 가볼 곳이 없어서 좀 멀어도 찾아와봤다. 근데 역시나 이 곳이 아니었음.
내가 들고 있는 서류의 주소를 보여주니 이렇게 저렇게 가라고 알려주기는 했다. 알려주는 대로 가보니 '어쩐지 여기가 맞는 것 같아' 싶은 건물의 입구가 나왔다. 그런데 여기도 아니라네. 이 때 이미 약 1시간을 걸어온 시점이라 몸도 마음도 정말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는 금방이라도 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곳 건물 입구의 경비실같은 곳에 들어가서 공안에게 물어봤더니 두 세명이 붙어서 막 검색해보고 알아봐주더라. 내가 가지고 있는 서류의 전화번호로 전화도 해서 이들과 통화를 하게 해주었다. 그런데도 위치를 알기가 쉽지 않았는지 나한테 지도를 그려서 알려주려고 시도하다가 검색기를 돌리더니 차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없다고 하니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고 묻는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했다. 그러자 한 명이 자기가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낯선 남자의 차를 탄다는 것에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의 나는 별 다른 옵션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나는 대충 가는 방향을 알고 있었는데 바로 내가 죽도록 걸어 올라왔던 그 길이었다. 그 길은 2차선 도로로 차들이 별로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뭔가가 이상하면 언제든지 뛰어내리면 된다. 1초 동안 이런 생각을 하고 알았다고 했다.
정말 우스웠던 건 그 경비실 같은 곳에 있는 공안은 3명이었는데 한 명은 일본 애니매이션을 보고 있었고 나를 태워주겠다고 한 사람의 갤럭시 탭 케이스에는 원피스 주인공 루피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고 아주 조금 안심했던 거다. 이들이 나쁜 사람일 확률은 조금 낮겠구나..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낯선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다시 검역 센터를 찾아 나섰다. 이 사람도 중간중간에 통화를 하고 다시 물어보고 확인하고 또 길가에 있는 사람에게도 물으며 겨우겨우 찾았다. 내가 아까 걸었던 길의 초입에서 살짝 꺾어져 들어가야 나오는 건물이었다. 손가락으로 이 건물이라고 가리키며 웃어주던 낯선 공안. 정말 순전한 호의로 나를 태워다 준 것이 확인되면서 너무 고마운 마음에 100위안을 건냈는데 웃으면서 한사코 아니라고 거절을 했다. 그리고 내가 건물 입구에서 별 문제 없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가더라. 정말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지 뭔가. 솔직히 이 사람 아니었으면 나는 끝내 이 곳을 못 찾고 울면서 돌아왔을 것 같다.
11시 반이 좀 넘어서 도착했는데 다행히 서류를 받아주었다.
이 이상한 분위기의 방이 내가 서류에 사인 몇 번을 하고 로에니와 1달만에 조우한 곳.
사인 몇 번 하니까 누군가가 벌써 이렇게 로에니를 가져다 주었더라. 나를 보고 막 소리 지르는 로엔. 아 진짜 울뻔했다. 오랜만이야 로엔.
사실 한 달 동안 로엔을 기다리면서 인터넷에서 북경 공항에 계류되었던 자기 강아지가 죽었다는 얘기를 보고 그 날은 펑펑 울었고 그 이후로도 걱정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정말 힘들었었다. 밥도 제대로 안 준다고 하고 시설도 지저분하고 열악하다고..아무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거의 학대 수준이었어서 강아지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만 봐도 울컥했었다.
검역 센터에서 서류 작업을 도와준 직원에게 부탁해서 택시를 불렀다. 이 직원도 역시 친절했다. 내가 택시타고 가는 것까지 다 봐주고 택시 기사에게 주소도 자세히 알려주고. 또 다행히 여자 택시 기사였다. 이 아줌마가 네비를 찍고 가는데도 중간에 길을 헤매서 좀 당황하긴 했지만 애플맵을 켜고 '리쇼우(오른쪽)' '와이쇼우(왼쪽)' 하면서 겨우겨우 집까지 오긴 했다.
집에 와서 드디어 캐리어 문을 열어주니 후다닥 나와서 집안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한 로에니.
나도 이제서야 제대로 로엔을 봤다. 원래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뭔가 낯선 느낌이 일순간 들었다. 조금 마른 듯 했지만 위축되거나 방어적이거나 하는 그 어떤 학대의 흔적도 없었기에 안심했다.
집에 돌아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너무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예전처럼 내 옆에서 잠들었다가 깬 로엔.
다시 예전같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참 다행이다.
로엔의 특징이 몇 가지 있다.
1. 욕조나 샤워부스를 화장실로 사용한다. 보통 고양이들은 모래가 있어야 하는데 아기 때 모래랑 욕조를 번갈아가며 사용하더니 언젠가부터는 욕조만 화장실로 사용했다. 그런데 가끔 고양이 호텔을 이용할 때는 또 모래 화장실도 잘 사용한다고 하더라. 아무튼 어느 집을 가더라도 욕조 혹은 샤워 부스를 찾으면 항상 그 곳에다가만 볼 일을 보는데 이번에도 데려온지 하루만에 샤워 부스에다가 볼 일을 봤다. 정말 신기함.
2. 밤에 잘때 내 다리 사이에 둥지를 트듯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잔다. 데리고온 첫 날 밤부터 내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서 잤다.
이렇게 첫 날부터 정말 빠르게 적응해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지내고 있는 로엔.
건강하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로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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