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보고 왔다.
야근에 대해 거부감이 있냐는 질문.
여기는 정시에 집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들.
한 두 시간 정도 늦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들.
번역 쪽 일이 원래 그렇잖아요-?
라며 동의를 구하는 질문아닌 질문.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에서도 내내 우울한 기분.
면접을 본 곳은 영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 회사이며
이쪽 계통에서는 나름대로 큰 곳이었는데
그래서 아주 조금은 선진국형 근무 환경을 기대했었는데
면접 때 저런 말을 들으니 정말이지 착잡했다.
이쪽 일이 "원래" 그렇잖아요-? 라니..
나는 잘 이해가 안 간다.
설계도, 디자인도, 인테리어도, 방송국 작가도,
"원래" 숱하게 야근을 해야 하고 가끔 철야도 불사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분야들이 이렇에 많다는 것.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나만의 시간은 커녕 가족들과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든 생활을 한다는 것.
그러다가 병이 나서 휴직을 하면 거의 대부분은 무급 휴직밖에 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일상 생활이 위협을 받는다는 것.
이렇게 벼랑끝에 사는 듯한 삶을 산다는 것.
물론 그 "원래"라는 것이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수많은 분야들의 숱한 야근과 철야는 시스템의 문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좀 꽉 막혀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게 시스템의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걸 알고 있더라도 애써 무시하고 "내가 게을러서 그래", "내가 영어 공부를 안 해서 그래"라며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을 오히려 마음 편하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대부분은 여기는 "원래" 그러니까-라며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추어 나간다.
끔찍하게도 "원래" 그런 특성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한층 더 우울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우울한 면접과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치떨리게 느끼고 있음에도
나에겐 달리 더 나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예전의 나는 인간답게 사는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이런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옛날 여자들은, 서민들은, 이런 것을 누릴 수 없었다며
이런 권리가 있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사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기분이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먹고살만 해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걸까?
그리고 내가 사는 사회가 여기는 "인간다운 삶"과 "행복"이 나의 그것과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난 정말 모르겠다.
특히나 소수의 입장이 되어버리면, 약자라는 것이 드러나면 너무 쉽게 무시당하는 이 곳.
나는 이 사회가 나를 곧 짓밟을 것만 같은 공포를 가끔 느낀다.
특히 출퇴근 길의 대중교통에서.
어느날 내가 짓밟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끔 느낀다.
나는 이 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곳에 속해있다고 느낄 수가 없다.
혹은 이 곳에 속해있다는 것을 거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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