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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의 졸업
9월 29일 Bartlett Pro Show 전시 오프닝을 마지막으로 chan의 공식 석사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이제 더이상 학교에 나갈 필요도 없고 과제도 없고 크리틱도 없다. 1년은 정말로 빠르구나 싶었다. 짧지만 나름대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코딩이라는 걸 배웠고, 타국에서 온 사람들과 팀을 짜서 함께 작업했고, 뉴욕과 보스톤으로 필드 트립도 다녀왔고, 노트북도 더 좋은 걸로 바꿨고, 등등.
논문과 졸업 전시회 모두 무사히 마치고 '우수'하게 졸업한 chan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고생 많았어.
졸업 전시회 사진
함께 다니며 도움도 주고 받고 고민도 나누며 친해졌던 J오빠와 K씨
모두 졸업 축하해요-
해가 진 후에 야외에서 진행된 오프닝
작품 사진들 몇 개
건축과 졸업 전시인데 건물은 하나도 없다는 게 함정
난해하다.
다들 본인들 말고는 뭐가뭔지 잘 모를 거 같은데. chan의 것도 몇 번이나 설명을 들었지만 절대로 기억은 나지 않는 그런 어떤 것.
공짜로 나눠준 술 마시고 취해버린 K씨에게 부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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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HS씨와 데이트
Old Street역 근처에 일요일마다 꽃시장이 열린다고 하여 가보았다. 사실 이건 나를 위한 HS씨의 배려였다. 몇 번이나 와봤고 사람도 바글바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딱히 꽃을 사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안 가봤다는 이유로 함께 가주었던 것.
오후 3시쯤 갔는데 이미 파하는 분위기. 그럼에도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앞 사람을 계속 쫓아가야하는데 막혀서 못 움직이고 몇 분이나 그냥 서있을 정도. 그래도 재미는 있더라-
뭔가 기념하고 싶은 날 와서 꽃 한 다발 사서 집에가면 정말 좋겠다 싶은.
꽃시장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Bricklane이라는 곳이 나온다.
여기는 예전에 다녀온 포토벨로 마켓처럼 이런저런 재미있는 물건들, 빈티지 옷들, 신기한 아이템들 등등을 파는 곳으로 유명하여 역시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다.
아래 사진은 런던 여행 책자에도 나와있다는 유명한 베이글 집. 주말에는 이렇게 항상 줄을 서서 사먹는다고..
맛은 뭐 좋다고는 하는데 이렇게까지 줄서서 먹을 정도인가 싶은 정도라고..한다.
난 빵에 별로 관심도 없고 이 날은 이미 오래 걸어서 다리도 아팠으므로 줄 서서 사먹는 건 패스.
사람들이 유난히 많은 길거리 액세서리 가게에서 산 리본 반지
은인데 4£에 사서 나름 만족
걷다가 걷다가 어느 펍에 들어가서 나는 커피 HS씨는 맥주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나와서 또 걷고 옷 구경도 하고 그러다가 또 예쁜 술집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나는 탄산수를 마시고 HS씨는 다시 맥주 한 잔-
각자 주전부리로 매우 건강한 느낌의 올리브랑 컬리플라워 아몬드 페스토를 시키고 또 수다수다.
주전부리가 가격대비 양도 많았고 맛도 좋았고 화장실 핸드 워시와 핸드 크림이 Aesop 거라서 다시 한 번 감탄하고 나왔던 곳.
나중에 chan이랑 또 가보고 싶은데 이 날은 HS씨를 따라만 다녀서 혼자 다시 가라면 못 찾아갈 그런 신기루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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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사
16일-
드디어 세 번째 이사를 했다.
15일 짐 싸는 중
조금씩 조금씩 싸으니까
벌써 이만큼이!
나는 일을 해야해서 거의 모든 짐을 혼자 싼 chan은 나중에 보니 정말로 땀이 주륵주륵-
이사할 때 트럭 부르고 드라이버가 좀 도와주는 걸로 60£에 예약 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견적으로 낸 짐보다 6~7 박스가 더 많았는데도 아무런 추가 요금도 없이 친절하게 도와주기도 했고 드라이버이자 헬퍼였던 흑횽이 진짜진짜 힘이 세서 chan은 계속 헉헉거리며 땀을 흘리는데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호흡에 흐트러짐 하나 없이 서랍장도 혼자 번쩍번쩍 들며 일을 너무 잘해주었던 것.
어쨌든 남자 둘이니까 자연스럽게 같이 협력해서 짐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집 ------ chan --------------------- 흑횽---------------------차
이게 점점
집 ------ chan ------------- 흑횽-----------------------------차
집 ------ chan --- 흑횽---------------------------------------차
집 ------ 흑횽-chan ------------------------------------------차
이렇게 되어버림.
흑횽이 다가올수록 chan은 뭐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흑횽의 속도에 맞추려고 더 빠르게! 더 많이! 해보았지만 결국은 추월당함.
짐 옮기면서 chan이 계속 한 말
'우와, 진짜 빨라.'
'아..힘이 진짜 세'
'아, 피지컬이 달라, 피지컬이.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우리가 말한 것 보다 짐이 조금 더 많았음에도 묵묵하지만 친절하게 도와주어서 일이 끝나면 주기로 했던 47£를 50£로 주었더니 너무 좋아했다. '그래, 팁 주길 잘 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레스토랑이나 카페나 술집에서는 팁 주는 게 영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지 않는데 이렇게 몸 쓰는 일 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팁을 주고싶은 그런 마음이 든다.
새로 이사한 동네 거리 초입
chan은 저 난간있는 좁은 길이 홍대에서 신촌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던 작은 다리가 생각나서 좋다고.
부동산에 가서 키 받고 이사온 집에 짐을 푸르고 심란해 하는 중
이제 또 정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하다가 일단 너무 피곤하니까 치약 칫솔이랑 잠옷만 어떻게 꾸역꾸역 찾아서 꺼내고 씻고 잤다.
아직 다 꺼내지도 못한 부엌 살림들 속에서 만들어낸 기름진 아침 식사-
멋대로 쌓여있는 짐들로 가득한 집을 뒤로하고 근처 카페에 갔다.
카페라떼, 플랫 화이트, 애플 타르트
이걸 사이에 두고 우리는 몇 시간이나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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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일
사실 오늘, 2015년 10월 17일, 은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날로부터 3000일이 되는 날이다.
3000일-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이승환의 1000일 동안을 들으며 누군가와 1000일을 함께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했던 옛날이 떠오른다.
어느새 이제는 서로의 존재가 익숙해졌고 당연해졌다. 이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로 상상하기 힘들고 100%는 아니지만 종종 한 사람이 '아'하면 다른 사람이 '어'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로 인생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도 싸우고 섭섭하고 가끔은 진짜 저걸 죽여 살려 하는 그런 순간이 있지만
같이 웃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훨씬 더 많다.
결혼할 상대는 처음 만날 때부터 느낌이 다르다는 말-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맞는 말이었던 것 같다.
처음 만난 날부터 검은 봉다리에 만화책을 들고 덕후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바보같이 웃었던 chan을 보고 나는 못생기고 다리도 진짜 두껍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만나고 돌아와서 그 다음 날 자꾸 생각이 났었다. 이상한 것은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나? 하는 질문보다는 이 사람이랑 지금 당장 키스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너무 신기하고 낯설었는데 나쁘지 않은 그런 이상했던 감정. 동네 바보형이 증인이다. 그 때 전화로 내 마음을 시시콜콜 다 말했었으니까. 그 때 동네 바보형이랑 '정말 이상한 느낌이다. 이게 뭘까?' 했었는데 그게 결혼삘이었나봐. ㅋㅋㅋㅋ 뭐야 이게.
아무튼 3000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는 또 어떤 길이 펼쳐질 지-
우리에겐 어떤 옵션이 있는지 말해보고
내 생각을 말하고 니 생각을 묻고
쓸데없는 망상을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50살쯤 되면 10000일이 되겠네..라는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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