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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단기 방 구했다.
chan이랑 같이 한 1~2주 빡쌔게 알아보고 방 보러 다니고 하다가 결국엔 구했다. 구하려고 하니 또 구해지더라. 나는 (늘 말하지) 항상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기 때문에 사실 진심으로 길거리로 쫓겨나 집 없이 방황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어쨌든 다리펴고 잘 곳이 생겼으니 다행이다. 동네는 지금 동네보다 시내에 조금 더 가까운 곳이고 좋은 동네다. 여기 표현으로 poshy 하다. 고급지고 우아한 느낌..poshy라는 단어 난 한국에서는 한 번도 써본 적도 없고 아예 모르는 단어였는데 여기 오니까 그렇게 많이 쓰더라. '그 동네는 너무 포쉬해.', '그 애가 좀 포쉬하잖아.' 이렇게. 하지만 항상 좋은 뜻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비꼬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자꾸 딴 얘기로 새네.
아무튼 새로 구한 집은 동네는 좋지만 집 자체는 지금 사는 곳보다 후지다. 복층 스튜디오인데 부엌도 훨씬 더 좁고 카페트 바닥이고 건물이 우리나라 대학가의 원룸 건물 같이 건물 내부가 다 원룸으로 되어있다. 근데 외관으로는 전혀 알아볼 수 없음. 예쁜 주택들이 주욱 이어지는 거리인데 그 중 한 주택은 안에 들어가니까 이 구석 저 구석을 다 원룸으로 리모델링 해놓은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런던의 집들은 이런 곳이 정말 많다. 외관은 건드리지 않아서 그냥 일반 주택인데 내부만 리모델링 해서 원룸이나 1베드 플랏으로 만들어서 방에 세주는. 아, 그리고 세탁기가 공용이다. 근데 가격은 지금 사는 곳보다 훨씬 비싸다. 하하하하하하하-
방 계약을 하고 나와서, '아 그래도 잘 구했다.' 라고 말해놓고 이따위 원룸을 한 달에 약 250만원 가까이 내야하면서 잘 구했다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 어처구니가 없어짐. 그렇다, 이제 다리뻗고 잘 곳을 구했으니 나는 지체없이 바로 그 다음 걱정으로 옮겨갔다. 이 월세를 어떻게 내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러면서 또 월세 못내거나 고양이 기르는 거 걸려서 살다가 쫓겨나는 상상을 -_- 진짜 이것도 병이다. 이러니까 위궤양이 오지.
그럼 말 나온김에 바로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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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궤양 도짐
지난 번에 우울하다고 썼을 땐 조금 아픈 정도였는데 그 후로 하루이틀 관리하니까 괜찮은 것 같아서 어제 점심에 돼지 불고기 해먹었다가 좀 심하게 다시 아파짐. 이게 아플 땐 진짜 괴로운데 그렇다고 식욕이 사라지거나 하는 병은 아니어서 조금만 증상이 완화가 되면 금새 먹고 싶었던 것들이 이것저것 고개를 들고 당장 안 아프기 때문에 조금은 먹어도 될 것 같고 그렇다. 근데 그러다가 이렇게 심하게 아파지는 듯. 휴-
오늘 점심에 참치야채죽 한 솥 끓이고 저녁에는 토마토 스프 한 솥 끓였다. 며칠동안 번갈아가면서 매일 먹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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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야기
내가 다니는 회사는 큰 건물의 한 층을 부분적으로 쓰고 있는데. 회사 내부가 아닌 다른 사무실이랑도 함께 쓰는 탕비실같은 공간이 있다. 접시랑 포크, 나이프, 컵, 작은 냉장고, 디쉬 워셔, 정수기(무려 탄산수가 나옴) 등이 구비되어 있다.
근데 내가 입사하기 전에 이 곳에 전자렌지가 있었다가 냄새가 너무 난다며 건물주(?)인지 누가 그걸 치워버렸다고. 근데 점심을 싸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자렌지가 없어진 것에 대한 반발이 심했었나보다. 입사하고 회사 전체 메일로 가끔씩 오피스 매니저에게 이런 내용의 메일을 가끔씩 받았었다.
'전자렌지가 없어져서 많이 불편하지? 우리가 차선책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조금만 기다려줘..미안.'
'아직도 차선책을 찾지 못했어..어쨌든 전자렌지를 다시 들이는 걸 불가능하데. 미안해 많이 불편하지? 너네를 위해서 뭘 해야 좋을지 고민 중이야. 혹시 아이디어가 있다면 알려줘.'
그러다가 지난 금요일에 받은 메일
'전자렌지로 너네가 불편함을 겪는 걸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가 매주 수요일마다 점심을 제공하기로 했어! 아래 메뉴 중에서 투표해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진짜 적응 안 되더라. 물론 좋은 의미로-
전자렌지가 없어서 이렇게까지 미안해하며 화난 애 달래듯이 조심스러워하는 회사는 정말 처음 봄.
암튼 그래서 다음 주에는 수요일에 출근을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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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카페에서 수다
런던에서 거의 유일하게 친구같이 가까워진 HS씨가 고향인 제주도에 갔다가 돌아온 기념으로 Bermondsey St.에서 만나서 예쁜 카페에 들어가서 수다를 떨었다. HS씨의 제주도 얘기, 조카들 얘기, 남자친구 얘기. 나는 회사 얘기, chan 얘기, chan의 취업 얘기. 그 외에도 기타등등-
런던에 산지 6년이 넘은 HS씨는 아직도 항상 결국엔 한국으로 돌아가야할지 런던에서 계속 살아야할 지를 못 정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제주도에 다녀오니 또 역시 결국은 제주도로 가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날씨 좋은 제주도에서 가족들이랑 맛있는 것 먹고 있다가 런던에 오니까 비오고 우울하고..뭐지? 나 왜 여기있지? 했다며. 그리고 우리들의 대화는 항상 취업비자 받기 미친듯이 힘들고 유학생들에게 돈 겁나 밝히는 영국 욕-하지만 한국 정치는 또 쓰레기. 이번에 노동법 바뀌어서 해고하기 쉬워졌다며 또 미쳤다고 욕하고. 이렇게 양 나라 욕으로 마무리.
그래도 어쨌든 모처럼 예쁜 거리를 걷고 예쁜 카페에 가서 좋은 사람이랑 수다떠는 것에서 나오는 좋은 에너지는
지금 내 생활에서는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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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양가 부모님께 전화드리고는 진짜 뭐 별 거 없이. 오히려 평소보다 더 무기력하게 하루가 지나갔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이 났다. 런던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석이었었다. Airbnb로 구했던 숙소에서 한국 시간에 맞추어 화상 통화를 하고 크게 웃으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1년밖에 지나지 않았었는데 그 때의 그 희망찼던 마음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약 1년 동안 내가 좀 지친 것 같다. 그게 달라진 점인듯.
카스에도 올렸지만..여기도 슈퍼문이 뜨기는 했다.
녹두전이랑 집에서 만든 신김치 들어간 만두..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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