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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6개월만에 그만 둔 이유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1년은 더 다녀야지 했는데, 그냥 며칠 사이에 갑자기 무너졌다.
결국 6개월 버티고 끝난 이번 회사.
사람들은 참 좋았다.
이전 회사에 비하면.
근데 일이...정말 많기도 했는데 너무 주먹구구로 돌아갔다. 누구 하나 그만 두면 땜빵식으로 돌려막고. 사고 하나 터지면 체계적으로 원인 분석 이딴거..하는 척만 하고 결국엔 주먹구구로 고객한테 말빨로 변명만 하고 끝난다. 업무 강도도 정말 높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언어를 다루는 일은 다 덤벼들어 한다고 해놓고 사실 언어학적 기본 지식 있는 사람 한 명도 없었다. 또 나한테서 그런 지식을 구하지도 않았다. 고객 미팅가서 이사가 떠들어대는 말 들어보면 여기저기 다 주서 들은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게 전부였다.
근래도 어쩔 땐 재미도 있었다. 일하면서 가끔씩 재밌다고 느꼈기 때문에 6개월이라도 버틴 거 같다.
내가 결정적으로 무너지게 된 계기는 윗사람들 마인드.
내가 6월부터 맡고 있었던 프로젝트 A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 처음 배우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데도 1달 정도가 걸렸지. 근데 뭐든지 한 6개월 정도는 해봐야 그 일이 뭔 일인지 좀 알고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1달은 정말 그냥 딱 이해하는 수준 정도. 나는 그랬다. 근데 8월달에 출장 3주 정도 앞둔 상태에서 프로젝트 B를 또 나한테 준다. 원래는 인도에 있는 PM이 하던 일이었는데 걔가 그만 두게 되면서 그 일이 나한테 넘어온 거다. 원래대로라면 사람을 뽑아야 겠지만, 회사가 돈을 아낄려고 나한테 준 거-라고 내가 추측한 게 아니다. 실제로 부장님이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그럼 나한테 월급 더 주나요?'하고 싶었지만,
'그런 거 아니라면 하기 싫다', '못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리하여 약 2~3주간 프로젝트 A도..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지만 익숙하게 바로바로 고객이나 벤더에게 응대할 정도는 아닌 상태), 출장 준비 + 프로젝트 B 배우면서 바로 고객 응대
이 때부터 쫌 정신이 없었다.
회사일은 배우는 시간 따로 주는 게 아니라서 교육과 실제 업무가 동시에 일어나니, 난 이 부분을 어떻게 하는 지 아직 모르겠고, 물어볼 사람도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그 와중에 고객은 자꾸 재촉질을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사소한 사고도 자꾸 치게 되고, 그 사고 뒷수습 해야하고,,,이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게다가 프로젝트 B의 고객은 메일 주고 5~10분 내로 대답이 없으면 바로 재촉 메일을 보내는 스타일..
그런 상황에서 출장을 갔다.
다행히 출장 기간 동안에는 시차도 있고, 현지 업무 중에 멀티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서 프로젝트 A만 하면 됐었다.
문제는 돌아와서-
출장가서 했던 작업 파일 정리하고 확인하면서 이탈리아 지사에 다시 몇 번 보내서 수정 요청하고 그거 다시 고객한테 보내고 등등 출장 마무리를 짓는 와중에 출장 기간동안 있었던 프로젝트 B 작업 트래킹. 2주 넘게 안 봤더니 또 새롭고 뭐 그런 상황.
그런데,
우리팀에 대리 한 명이 9월 달에 그만 둘 예정이었고, 그 사람이 하던 프로젝트 C가 또 나한테 넘어오기 시작...그게 한 2주 전인거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프로젝트 A, B 둘 다 익숙하게 척척 알아서 하지도 못하고, 아직도 가끔씩 뭐 하나 알아볼라고 2~30분 걸려 자료 읽어보고 숙지하고 해야 하는 와중에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배워서 맡아서 해야 하는 상황.
다행히 프로젝트 A는 출장 이후로 잠시 소강 상태라 일이 거의 없었지만, 언제 다시 일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참고로 9월에 그만 두는 대리는 프로젝트 C의 일이 몰려서 8월 초부터 3주 연속 11시 12시까지 야근하는 걸 내가 봤고. 이 프로젝트가 특성상 일이 적었다 많았다 하는데 일이 몰릴 때는 이렇게 몇 주간 야근을 해야 하는 거. 그러니까 내가 프로젝트 C를 맡으면 가끔씩 몰려올 때 저렇게 야근을 해야하고, 그 와중에 프로젝트 A도 다시 일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거. 눈 앞이 깜깜했다.
"근데..사람이 그만두는데도 사람을 안 뽑아요?" 라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네..회사가 마진이 안 좋아서..나는 뽑자고 말은 해볼건데..아마 안 뽑을 거에요."
한 사람이 그만두면, 그 사람한테 줬던 월급이 그대로 남는건데..그 돈으로 새로운 사람을 안 뽑고 마진율을 높이는 데 쓰겠다는 거지. 남아 있는 사람들 피 빨아 먹으면서.
그렇게 한 일주일 프로젝트 A, B, C 하니까..못 하겠드라.
어느 순간 갑자기, 메일을 못 보겠드라.
이게..일도 일이지만, 앉아서 생각할수록 윗대가리들이 너무 괘씸한 생각이 들어 화병나겠드라.
그래서 며칠 고민하다가..별 대책은 없지만 일단 그만 두기로 했다.
사직서는 지난주 금요일에 냈고 어제 마지막 출근했다.
근데 아마 나도 그만두고 9월달에 또 한 명 그만둬도, 아마 사람 안 뽑을거다..
에휴-
지금도 약간은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버텼어야 했던 건지.
남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다들 버티는데 나만 못 버티고 튕겨져 나오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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