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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당한 어느 날
회사 일은 회사 일일 뿐, 내 인생을 놓고 보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절대로 마음 깊이까지 흔들리지 말자. 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고도 잘 지켜지지 않는 지랄같은 감정. 어제는 꼴랑 6개월 된 신입사원이 갑질을 해대는 데 메일 읽다가 뒷목이 후끈해 지는, 이런 일은 처음 겪어봤다. 아직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안 되는 아이가 갑질을(기질인 건지, 아님 위에서 가르친 건지..) 해대니..지가 파일 포맷 제각각으로 던져주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으면서 내가 보낸 파일에 통일성이 없다고 적반하장 지랄. 지가 해서 보내줘야 할 내용을, 우리보고 왜 안 해왔냐고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서 적반하장하며 일 떠넘기는 콤보지랄. 나중에 수정 사안 제안할 PPT를 보낼 건데 그걸 통계를 내달라는 무식한 지랄.
나는 무슨 옛날 귀족집에 진짜 싸가지 없는 애새끼 시원하게 혼내지도 못하는 유모가 된 느낌이었다.
어쨌든 보자마자 열이 화악 올라서 나도 완전 공격적인 걸음으로 한 달음에 부장님 자리로 갔다.
가자마자 "메일 보셨나요?" 씩씩..
뭐 여튼 부장님이 나름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마지막에는 '답변 줄 때 할 말은 하세요' 라고 해줘서 '네 그럴려고요!' 하고 다시 공격적인 걸음으로 자리에 돌아와 타!닥!타!닥! 분노의 답변을 써서 보냈다. 물론 성에 찰 정도로 쓸 순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화가 났던 적은 정말 처음이라 집에 돌아가니 심신이 피곤한데 계속 떠오르고 계속 분하고 계속 괘씸하고 계속 죽여버리고 싶고. 와인 한 잔 마시면서 chan과 갑 성토대회를 벌였다.
근데 그러다 chan의 군대 시절 얘기가 나왔다. chan은 군대에 들어가서부터 나오는 날 까지 매일매일매일매일 다이어리에 D-730, D-729, D-728 이렇게 하루가 또 지난 걸 적어놨다고 한다. 그러면서 100단위가 바뀌는 날에는 혼자 PX에 가서 자축을 했다고.
그 얘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나도 사실 오늘 자축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개그지같은 갑질에도 살아남아 집에 돌아왔잖아? 이건 오늘도 승리한 걸로 쳐줘야지. 하는 생각이 퍼뜩.
그 김숙닮은년의 괘씸한 말 한 마디 한 마디 곱씹지 말고, 그런 말에도 난 오늘 버텨냈고 살아서 집에 왔다. 오늘도 지났어. 이제 내일이면 내가 버텨야 할 날이 또 하루 주는 거다. 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와인이 훨씬 달게 느껴졌다.
긍정의 chan에게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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