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깨서 물 한잔 마시고 여느때처럼 다시 자러 들어가려다가 발걸음을 돌려 거실로 왔다. 이 집에서 창 밖으로 이른 아침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진다. 겨울이라 창문을 꼭꼭 닫아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쉽네.
약 일주일 전
동네 레스토랑에서 서빙 알바를 시작했다. 집에서 걸어서 약 7~8분 거리에 있는 아시안 퓨전?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다. 주인과 매니저는 유태인이고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중국,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등등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인들이다. 나 이외에 다른 웨이트리스는 프랑스, 헝가리인들이고. 오는 손님들은 90%가 백인 유태인들. 이 동네 남자 유태인들은 다들 머리에 쪼끄맣고 동그란 천을 꼭 붙이고 다닌다. 일주일에 6일, 오후 5시~11시 30분까지 일하는데 실상은 11시 30분까지 하는 날 반, 좀 더 일찍 끝나는 날이 반이라..괜찮다. 일이 끝나면 chan이 데릴러 나온다.
처음 하루이틀은 긴장도 하고 해서 엄청 몸도 정신도 힘들었는데 하루이틀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처음엔 그냥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테이블 셋팅하고 음식 서빙하고 그러다가 이제는 엊그제부터는 주문도 직접 받기 시작했다.
약간 문화 충격이었던 건,
처음 며칠간 매니저가 나한테 했던 말-
'너 왜이렇게 주눅이 들어있어? 자신감있게 하라고! 손님이 오면 니가 보스라는 걸 알리는 태도로 행동하란 말이야. 절대로 겁먹지마.'
나름대로 '손님한테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내가 떠올린 건 당연히 한국에서 지낼 때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는데. 그게 주눅들어있고 겁먹은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것에 당황스러웠고. 손님한테 '너네가 아닌 내가 보스다' 라는 태도로 대하라는 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그건 너무 무례하게 구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혼란스러웠는데 며칠 지나자 나름대로 이 문화에서 무례하게 구는 것과 자신감 있게 구는 것을 구분하여 행동하는 법이랄까? 그런 게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한 번은 한 노부부가 손님으로 왔었는데
다른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고 있었고 나는 옆에 있으면서 가끔 주문받는 애가 나한테 뭘 설명해주면 '아 그레? 그렇구나. 오케오케'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가 나한테 일을 하기 시작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정말 기분좋은 미소로
'Good for you!'
라고 말해주었던 것.
낯선 타인에게서 들은 이 짧은 응원의 말이 그냥 며칠간 떠올릴 때마다 기분 좋았다.
그리고 확실히 일을 하니까 조금 더 이들 문화에 깊이 들어와서 바라볼 수 있게된 것 같아 좋다.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구직활동만 하던 때보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훨씬 덜하고. 또 한국같은 진상 손님을 상대할 필요도 없어서..정말로 정신적으로는 지치는 것이 거의 없다. 비록 몸은 좀 힘들지만;
사실 '내가 이 나이에 이 학력에 레스토랑 서빙 일을 하다니' 하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슥슥 흘려 보낸다. 충분히 무시해도 좋을 생각이라서.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1204,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0) | 2014.12.05 |
---|---|
20141201, 먹고살기, 새로 시작한 드라마 (4) | 2014.12.02 |
0141119, 일상 업데 (5) | 2014.11.20 |
20141112, National Gallery (6) | 2014.11.12 |
20141108, 런던의 첫 겨울 (2) | 2014.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