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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51211, 한국와서 보낸 날들


*

인천 


우리가 진짜로 한국에 온 날은 11월 30일이지만 

로엔을 호텔에 맡겨야 하는 관계로 부모님들께는 12월 1일에 도착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런던으로 갈 때부터 느꼈지만 애완동물을 데리고 외국을 왔다갔다하는 것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이 부분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있는 경우는 더!)



아무튼 그리하여 12월 1일 엄마랑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고 내가 주문했던 녹두전이랑 chan이 부탁 드렸던 돼지갈비를 배터지게 먹고 대충 짐 푸르고 씻고 좀비같은 상태로 잠이 들었다.


그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바빴다. 


내가 없는 동안 새로 태어난 조카 소윤양을 비롯해 만날 사람도 많았고


광명 IKEA에서 만난 아기 돼지 같은 소윤양은 손가락을 아주 맛있게 쪽쪽 빨아먹는 귀엽고 순한 아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채윤이는 당연히 날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금방 다시 친해져서 손붙잡고 같이 돌아다녔다. (IKEA는 진짜 컸다. 진짜 엄청 크더라. 볼 것도 많고. 한국에서 다시 살기로 했다면 사고싶었을 물건들도 엄청나게 많고. 기대했던 김치볶음밥이랑 미트볼은 생각보다는 그냥저냥)


동네 바보형은 바보인데도 어찌저찌 카페를 차리고 그걸 아둥바둥 꾸려나가고 있는 모습에 감탄했다. 카페는 사진으로 봤던 것 보다 이뻤고 좌식 테이블이 온돌이 된다는 건 좀 감동. 덕분에 우린 스터디 카페 좌식 테이블에 누워서 미친듯이 잠을 잤다. 우리는 원래 바보형 카페에 들렀다가 무한도전에서 나온 아현동 간장게장집에 가고 싶었는데 바보형이 끊임없이 음식을 가져다주는 바람에 계속 배가 불러서 못갔다. 


남편인 BS군과도 (우리 앞에서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미있게 잘 살고 있는듯 했다. 신혼집도 어울리지않게 아기자기 이뻤고. 


수많은 chan의 이모님들 중 유일하게 서울에 살고계신 막내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수많은 chan의 사촌 동생 중 또 유일하게 서울에 거주하며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인 사촌 동생을 한 방에 다 만났다. 막내 이모의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북경 국제학교로 유학을 생각 중이시라고 하셨다. 혹은 유학까진 아니더라도 방학 때 어학연수같은 건 정말 보내고 싶으시다고. 어차피 기숙사(여기서 안심)라 우리랑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너네가 거기 있다는 게 위안이 될 것 같다며. 그 얘기를 들으면서 초등학교 5학년인 예인이는 뭐하고 있나? 잠시 궁금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우리가 중국에 가는 것에 대한 반응은 크게 긍정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으로 나뉘었다.

부정적인 쪽은 '으읔, 중국! 어뜩해 중국이야! 아 더럽! 게다가 북경!!!! 황사 어쩔꺼임? 길가면서 코푸는 아줌마들 어쩔꺼임? 으읔 중국. 암튼 거기껀 믿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왠만한 건 다 한국에서 사가지고 가야함. 달걀도 가짜로 만드는 놈들임' 

긍정적인 쪽은 

'요즘 대세는 중국! 중국은 어마무지한 기회의 땅임! 물론 좀 더럽고 미개한 부분이 있지만 암튼 거긴 장난 아님.'

'한국 경제는 앞으로 몇 년은 계속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으니 피해서 있을 수 있다면 그게 좋당.'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우리는 그냥 계속 갈팡질팡하는 중. 그래도 기왕 가기로 했으니 좀 좋게 봐주려고 노력하는 중.



비자랑 경력 증명서, 학력 증명서 등등 처리해야할 서류도 많았고


비자는 신청했고(나는 관광비자, chan은 무슨 비즈니스 관련 비자) 다음 주에 받으러 가면 된다. 회사에서 혹시 리젝되더라도 당황하지 말라는 메일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별 소식이 없는 걸 보니 그냥 무사히 나오려나보다. 

로엔 광견병 주사 맞춘 거랑 건강증면서도 무사히 받았다. 영국에 데려갈 때랑 비교하면 중국은 확실히 훨씬 더 쉽긴 하다.

chan의 경력 증명서는 다음 주 건원으로 가서 발급받아야하고 건축사 협회에도 찾아가서 (돈 내고) 회원가입해서 경력 등록을 해야 한다. 

이 서류들은 중국에 가져가면 공인받은 번역회사에 맡겨서 중국어로 번역해야 함.


로엔 관련해서도 알아볼 것도 많고 병원 델꼬가서 다시 광견병 주사 맞춰야 했고


호텔에 맡기고 원주 내려오는 날 데릴러 갔는데 호텔방에서 우리를 보며 팔짝팔짝 뛰면서 소리지르는 로에니를 보니까 마음이 짠했다.

지금은 원주에서 다시 좀 평안을 되찾고 잘 지내고 있는 중. 어머님한테는 미움받고 있지만 아버님은 엄청 예뻐해주고 계심. 흐흐 


다시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고.



게다가 chan은 심하게 감기 몸살이 걸려서 골골거렸다. 나한테 안 옮길라고 서로 조심조심했는데 결국 chan이 감기가 떨어질 때쯤 나한테로 옮겨왔다. 이 와중에 나는 계속 일까지 해야해서 며칠 정도 상당히 세상에 화가 나있었음.




*

원주


수요일, 둘 다 감기로 골골거리면서 컨디션 최악인 날 겨우겨우 살아서 원주에 도착했다.


와서 어머님이 만들어준 만두국에 양념게장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다음 날은 태훈이네 부부랑 중앙시장에 있는 신혼부부 분식집에서 돈까스랑 김치볶음밥이랑 쫄볶이를 또 배가 터지게 먹고

우연히 오늘은 또 태훈이 생일이라 저녁에 또 소고기집에 가서 배가 터지도록 먹어볼 예정.


먹고 먹고 또 먹는다.


둘 다 컨디션 최악인 상태로 원주에 왔는데 

원주에서는 그래도 여기저기 나가서 볼 일도 없고

어머님 아버님은 두 분 다 일하러 나가시니까 

우리끼리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어서 그런지

암튼 이젠 둘 다 상태가 조금 호전되었다.


원주에 오니까 chan은 네비게이션 없이 어디든 자신감있게 척척 잘 다닌다. 멋있다.


우리가 런던에 있을 때 오픈해서 사진으로만 봤던 태훈이네 가게를 드디어 가봤다. 사진으로 봤던 것 보다 훨씬 더 이쁘고 좋아보였다. 인테리어에 소질이 있는 듯. 이번에 바로 앞에 맥주 가게를 또 차린다는데. 암튼 우리 대신 장남 및 맏며느리 역할 잘 해주어서 고마운 이 부부도 잘 됐으면 좋겠다.



귀찮으니까 사진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