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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있었던 일일까?
용평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둘이서 조용히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편안히 커피를 즐긴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정리도 하고 책도 보고 번역도 하고..그래야지? 중국에서 엄마와 함께 보냈던 날부터 시작해서 한국에 다녀오고 다시 중국에 와서는 바로 다시 귀국 준비를 해야했던 약 한 달간의 시간. 이 기간 내내 루틴이 무너져있던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이 쌓여있어서 조금 초조하기까지 했다. 얼른 하고싶어! 빨리! 모든 걸! 이런 느낌. 여기서 보내는 이 시간을 규칙적으로 건강하게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첫 날부터 뿜어져 나와 커피잔을 들고 테라스의 나무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논문 번역을 시작했다. chan은 뭘 오자마자 번역을 하냐고 핀잔을 줬다. 본인은 며칠간 그저 널부러져있고 싶었는데 옆에서 내가 뭔가를 하면 부담이 되니까 나도 같이 며칠은 널부러져있어 주길 바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하루도 지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낮잠 따위도 자고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비로소 긴장이 풀린 것인지 저항할 수 없게 몸이 나른해지면서 소파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자고 싶지 않은데? 자면 오늘 밤에 또 늦게 자게되잖아? 아..안돼.. 결국 소파에 반쯤 누워 책을 보다가 둘 다 스르륵 잠이 들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낮잠을 자는 편이 아닌데 둘 다 뭔가에 홀린듯 잠이 든지도 모르게 그렇게 잠이 들었다. 잠결에 쌔근거리는 소리와 로엔이 우리 사이로 들어와서 뒤척이다 잠이 든 것도 느꼈다. 1시간인지 2시간인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먼저 눈을 뜬 것은 나였다. 계획에 없던 잠에 들었다가 깨었을 때의 당혹스러움. 내가 있는 시공간의 개념이 혼란스러운 순간. 여기가 어디지? 지금은 낮인가? 초저녁인가? 그렇게 어렴풋하고 몽롱한 상태가 되었을 때 문득 모든 일이 아득히 꿈같았다. 우리가 영국에 갔던 것도. 중국에 갔던 것도. 그 낯설고 먼 나라에..우리가 정말 갔었던 걸까? 그 모든 것이 정말로 다 있었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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