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쯤 한국에서 친정 부모님이 오셨다.
엄마랑 거의 일주일 정도를 함께 보냈는데 그게 생각보다 참 힘들었다. 반갑고 좋은 것은 잠깐이고 내가 엄마집에 있는 것이 아닌, 엄마가 내 집에 있다는 사실. 엄마에겐 낯선 살림살이와 한국 TV도 없는 우리집에서 내가 혼자 책을 보거나 미드를 볼 수도 없고 거의 24시간을 함께 하니 정신적으로 참 지치더라. 엄마랑 얘기하고 엄마랑 요리하고 엄마랑 밥 먹고 엄마랑 청소하고 엄마랑 장 보고. 그리고 초등학생 때 이후로 엄마랑 한 침대에서 자는 것도 처음이라..이 부분도 힘들었다. 처음 이틀 정도는 어색하고 불편해서 뒤척이다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누군가와 24시간을 함께 해야만 하는 상황은 정말 힘든 것 같다. 그나마 친정 엄마이니까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었겠지.
이틀 정도는 공기가 너무 좋지 않아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다. 뭘 하면서 쉬어야할 지 몰라하는 엄마를 위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꽃보다 할배 시리즈, 걸어서 세계 속으로 시리즈를 계속 틀어줬고 하루는 chan의 회사 앞으로 가서 퇴근하는 chan과 함께 셋이서 북경 오리를 먹으러 다녀왔다.
북경오리집은 우리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딱히 갈 만한 이벤트가 없었다고 해야하나? 게다가 둘이서 가면 북경오리 하나만 먹어도 너무 배가 불러서 다른 요리는 먹을 수 없다는 말에 계속 망설이던 곳. 이번에 엄마랑 셋이서 가는 것이 기회다 싶었는데 마침 chan의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점이 있길래 찾아서 예약하고 다녀왔다. Dadong이라는 북경오리를 파는 체인점인데 북경에는 세 곳이 있다는 듯. 굉장히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어느 지점인지는 몰라도 오바마랑 메르켈 총리도 다녀갔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었다.
북경에 와서 가본 곳 중 제일 깔끔하고 좋은 식당이었다. 영어로 예약이 가능했고 화장실에는 무려 비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음식도 정말 맛있었다. 메인인 북경오리도 정말로 맛있었고(당연하게도 런던 차이나 타운에서 먹었던 북경오리랑은 차이가 났다)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따로 시킨 볶음밥도 맛있었다.
이 집의 특징은 북경오리를 시키면 요리사가 직접 나와서 테이블 옆에서 오리를 썰어주는 것.
이렇게 곱게 썰어주신다.
이건 북경오리 메뉴를 시키면 딸려오는 달콤한 깨죽 디저트
이것도 역시 딸려오는 디저트 메뉴 낑깡
이건 따로 시킨 디저트 에그 타르트. 다들 너무 배가 불러서 나만 하나 먹고 chan과 엄마 것은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가져온 에그 타르트는 다음 날 티타임에 아주 좋은 간식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북경에서 엄마랑 함께 보냈던 일주일은 끝이 나고 우리는 함께 같은 비행기에 몸을 실어 인천으로 갔다. 이제는 인천에서 일주일간 함께 보내기. 그래도 여기서는 24시간 함께하지 않아도 되니까 안심이었다. 나도 해야할 일들 만나야할 사람들로 바쁘고 엄마는 엄마대로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역시 인천집에서 보내는 일주일도 불편했다. 역시 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건 나에겐 고문같은 일이다.
일주일간 내가 해야 할 일들
비자 신청하기, 운전 면허증 갱신하기, 머리 자르기, NS양과 JH양 그리고 그녀들의 아가들 만나기, 작은 오빠네 방문해서 조카들 만나기, 동네 바보형네 카페 놀러가기, 닭한마리 먹기, 코스트코가서 포테이토 베이컨 피자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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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착한 날 인천 집 앞 여행사에서 바로 비자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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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양과 JH양
SY양과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JH양과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
우리 셋이서 함께 같은 학교를 다닌 것은 중학교때 뿐이었는데 어떻게된 일인지 이렇게 셋이서 늘 만나게 되었다.
아무튼 이 둘 모두 이제 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건 정말 이상한 느낌이 아닐 수 없다.
중학생 때 새벽같이 목동 도서관에서 만나 전주로 아이스 하키 경기 보러 갔던 일들이 떠올랐는데 지금 내 눈 앞에 이 둘은 각자 자기 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아있었다. 정말 새삼스러웠다.
시간이 흐르며 모든 것은 말도 안 되게 변한다. 신기한 일이다.
같은 날 오후에 작은 오빠네 아기들도 만났다. 채윤이랑은 띄엄띄엄 만나도 늘 금방 친해진다. 소윤이는 이제 기어다니고 가끔 기운이 넘치면 가구를 잡고 부들부들 서있는 정도가 되었다. 한참을 놀아주고 밥먹고 얘기하다가 이제 일어서려고 하자 채윤이가 "안돼!" "앉아!" 라면서 가지 말라고 울며불며 매달려서 마음이 아팠다. 그 와중에 뭔가를 느꼈던 것인지 멀뚱히 앉아있던 소윤이도 현관문으 쪽으로 기어오더니 중간에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기 시작. ㅋㅋㅋ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아기들 초상권 때문에 사진을 못 올리는 것이 유감이다. 재밌는 사진 진짜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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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다니던 미용실 디자이너 언니가 다행히도 계속 일하고 있었다.
다시 짧은 단발.
런던에 가기 전과 거의 똑같은 머리를 했다.
파마나 염색을 한지가 정말 오래된 것 같다.
가끔 파마나 염색을 하고 싶기도 한데 그거 관리해줄 생각하면 금새 귀찮아져서 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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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하고 미용실 앞에서 동네 바보형을 만나 코스트코.
포테이토 베이컨 피자랑 양송이 스프를 먹었다.
예상대로 맛있었음.
놀라웠던 건 이제 코스트코도 피자를 하프앤하프로 파는 것. 포테이토 베이컨 반 슈프림 반 이렇게도 살 수가 있다. 가격은 똑같이 12500원.
아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코스트코 ㅠㅠ
토요일 오전에 찾아간 인천 면허 시험장.
면허증 갱신하는데 넉넉잡고 30분이면 되겠지? 했는데 2시간이 걸렸던 이 곳.
뭐였을까 도대체?
갱신을 마치고 홍대까지 나왔을 때 엄마랑 나는 둘 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있었다.
대충 이렇게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3월 13일 일요일 오전에 북경에 도착했다. chan이 공항에 나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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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뉴스
이렇게 한국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한국에 가게 되었다.
chan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자세하게 얘기하려면 엄청 길어지는데 어쨌든 요는 회사가 어려워 수습이 끝나고 재계약을 해도 수습 기간에 주던 월급을 올려주기는 힘들 것 같다는 얘기. 내가 한국에 있을 때 회사로부터 이 얘기를 들은 chan은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돌아온 날 얘기를 해주었고 나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첫 반응은 충격. 짧은 며칠이지만 시간을 두고 계속 얘기해 보자고 했고 계속해서 얘기를 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해본 결과 그렇다면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 이 결론을 내리고 chan이 HR 직원에게 그럼 그만 두겠다. 그 월급으로 북경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고 나는 내가 훨씬 더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 얘기했더니 그렇다면 윗 사람들과 다시 얘기해 보겠다. 올려 주는 것도 고려하겠다 좀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이미 우리 마음은 떠난 상태.
며칠새에 월급 조금 더 오르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이 회사를 다니며 임원급들을 제외하고 1년 이상 다니고 있는 직원을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우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최근 수습을 끝내고 1년 계약을 해서 다니고 있던 핀란드 직원이 6개월만인 이번 달에 해고 통지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게되고 하니 지금 월급을 올려주며 계약 연장을 하더라도 언제든지 회사가 어렵다며 자를 수 있는데. 그 리스크를 안고 여기에서의 경력을 이어가는 것이 그다지 큰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다. 이 회사의 네임 벨류 버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좀 아쉽긴하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 업무 환경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큰 미련도 없었다.
우리는 3개월 동안 중국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정을 붙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 싫었다. 인터넷이 안 될 때마다 공기가 안 좋아질 때 마다 밖에서 지저분한 풍경을 볼 때마다 그냥 다 싫고 지긋지긋했었다.
이 월세를 내면서 이런 집에서 사는 것이 싫었고
또 내 경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그동안 없었던 편두통이 조금 생겨서 그렇지 않아도 신경이 쓰이는 상태였다.
서로 생각해보자고 한 뒤 며칠이 지나고 다시 얘기하는 자리에서 그만두겠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공식적으로 이번 주 수요일까지만 일하면 된다.
그 와중에 주말까지 사람 불러서 새벽까지 일을 시켰다. 휴..
chan이 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마감이라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건 이유가 되지 못한다.
왜 야근 수당도 주말 수당도 없이 회사가 원할 때는 나와서 일을 해야하며. 회사가 이용하는대로 이용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언제까지 회사의 횡포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참으며 살아야 하는지...영국에 가기 전에 분노했던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다시 분노하는 나를 봤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할까?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는 걸까?
내가 묻자 chan이 대답했다. 포기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아주 드물게 그의 말에 가슴 깊이 수긍했다.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또 알 수 없지만. 2주 정도는 용평에서 푹 쉴 것 같다. chan도 나도 심신이 많이 지쳤다.
올해가 지나면 결정을 내려야할 것 같다. 포기할지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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