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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
이케아에 가서 구경하다가 몇 개를 또 주섬주섬 사왔다. 큰 종이 별을 샀는데 그걸 어떻게 할 생각이냐하면,
저 의자 뒤의 전구를
chan이랑 로엔이 이렇게 저렇게 해서
이렇게 하는 것! ㅎㅎ
간 김에 현관 근처에 달고 싶었던 옷걸이랑 선반도 사서 사부작거리며 달았다.
내 집 아니어도 소소하게 꾸미는 맛은 참 뿌듯하고 좋다.
이건 작년인가...재작년에 산 트리.
크리스마스 시즌을 온 마음으로 즐기려고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었다. 주석달린 버전으로 봤는데 생각보단 그냥저냥. 당시 디킨스 씨가 저작권을 지키기 위해 엄청 열심히 싸웠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캐럴같은 작품은 유년기에 이 작품을 즐긴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는 뭐 딱히 재밌는 글은 아닌 거 같다. 영/미 문화를 좋아하고 거기에 나오는 레퍼런스를 몰라 답답한 경우가 있었던 사람들에게 미미한 만족감...을 줄 뿐.
몇 년 전 영국에서 코츠월드 여행하며 샀던 멀드 와인 번들. 이게 뭐냐하면 뱅쇼, 글루바인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는, 요즘 정말 많이 마시는, 와인과 각종 향신료를 넣고 끓여낸 음료를, 만들기 쉽도록 각종 향신료를 와인 한 병에 적당한 양으로 넣어서 파는 것. 육수팩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걸 몇 년째 까먹고 묵혀뒀다가 올해 드디어 뜯어서 와인 한 병 넣고 끓여봤는데 우왕 굿!!
뚜껑 열면 총 5개가 들어있다. 벌써 세 번을 해먹었으니 이번 겨울 안에 다 끝날 거 같다. 이거 정말 편리하던데. 아마 우리나라에도 곧 들어오지 싶다. 뭐든 엄청 빠르게 들어오니까 ㅎㅎ
사다놓은 배가 있어서 잘라서 한 조각 넣고 따듯하게 마시면서 주말 저녁에 영화보면 세상 행복.
올해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엄청 딸기딸기한 케이크였다. ㅎㅎ 맛있었는데 너무 커서 둘이 먹기엔 역부족. 내년부턴 누군갈 부르던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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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에 다녀오다
생전 처음 진부라는 곳을 다녀왔다. 평창 근처인데 동계올림픽 덕분에 KTX역이 생겨 서울에서 1시간 40분이면 가는, 생각보다 금방 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길 간 이유는 chan의 동생 가족이 이 곳으로 이사를 하고 둘째도 낳았기 때문. 새 집도 보고 이제 100일 갓 넘긴 아기도 한 번 볼겸 해서 다녀왔다. chan의 동생에게 여기서 사는 것 좋냐고 물었더니, 여긴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좋아요. 라고 하더라.
4살짜리 첫째 조카를 위해 사간 선물인데 chan이 더 많이 갖고 놀았다. 자기도 사고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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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다이어리 준비
올해는 참 신기할 정도로 스벅 스티커가 많이, 빨리, 잘 모였다. 덕분에 11월 말쯤 벌써 하나를 얻었고 12월 초에 chan 것 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번 건 몰스킨이랑 콜라보 한 거라 더 맘에 든다. 연말에 chan이랑 마주 앉아서 내년 다이어리에 중요한 날짜도 적고 새해 결심이나 목표도 적고 그래야지. 사실 새해 목표는 연말에 적을 때 빼곤 별로 들춰보지도 않고 가끔 봐도 그걸 적을 때랑은 상황이 바뀌어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그냥 한 번 앉아서 둘이 같이 새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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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은 왜 항상 내 다이어리를 따라하는 걸까. 내가 몰스킨을 사면 자기도 몰스킨을 사고, 내가 스벅 다이어리를 챙기면 자기도 그걸 챙기고...내가 아무거나 대충 고를 때는 본인은 안 써도 된다고 하며 안 사고...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아주 소액이지만 나름 앰네스티 기부를 한지 벌써 5-6년은 된 거 같다. 그 기간동안 처음 받아본 메일. 위안부 관련 보고서를 책으로 만들었다며 신청하면 그냥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신청하니 몇 주 뒤에 도착했다. 몇 년간 그냥 잊은듯이 통장에서 계속 기부액이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이런 걸 보내주니 뿌듯하고 좋더라. 책 내용도 아주 좋다. 국제 인권 측면에서 위안부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세세하게 나와있다.
날이 추워지면서 난로 앞을 좋아하게 된 로엔. 세상 나른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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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평태선
하아...이 얘길 어디서부터 해야하나.
이 얘길 시작하려면 약 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느날부터 입 안, 볼 안쪽에 이로 살 씹은 것 같은 하얀 줄이 느껴졌었다. 양 옆으로 다. 근데 딱히 불편한 것도 없고 해서 그 상태로 두세달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날부터 맵거나 뜨거운 걸 먹으면 통증이 느껴졌다. 초반엔 좀 참으면서 먹을만 했는데 갈수록 심해졌다. 무김치를 물에 씻어 먹으면 먹을만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에 씻은 무김치도 매워서 먹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매운 건 혀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볼 안 쪽 살이 타들어가듯이 아프다는 거.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무슨 세균이 퍼졌다고 말하면서 별 거 아니란 듯이 치료를 해줬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크게 호전되지 않자 심각하게 이거...어쩌면 조직검사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며 약을 바꿔주었다. 그렇게 이비인후과를 다닌 것이 약 3주. 그 사이 약은 세 가지를 처방받았는데 효과는 그냥 다 미미했다. 두 번째 먹었던 약이 그나마 괜찮았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암튼 3주가 지나자 의사가 말했다.
아무래도...세브란스 가셔야겠는데요...
네...갈게요...
나는 영문도 모른 채로 계속 뜨거운 것, 매운 것을 못 먹으며 지내고 있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식사 시간만 되면 아 저녁에 뭐 먹지? 하다가 내가 먹을 수 있는게 뭐지? 로 질문이 바뀌었고 그냥 한숨만 나왔다. 그와중에 세브란스 예약은 약 한달 뒤로 잡혀서 나는 또 금욕하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기다렸다. (세브란스 구강내과에 예약하려고 연락한 것이 10월이었는데 가장 빠른 날짜가 11월이었고, 그나마도 교수 진료는 내년 2월이라고 해서 기함을 했다.) 11월 예약 날짜가 되었고, 빨리 병명을 알아내서 치료해고 김치찌개 먹을 날이 멀지 않았을 거야...라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병원에 갔다. 예약을 했음에도 약 50분을 기다렸다 볼 수 있었던 의사 얼굴....앳된 레지던트의 얼굴...그래...뭐 레지던트도 의사잖아...내가 수술받는 것도 아니고...알 건 다 알거야...
의사는 내 증상을 아주 소상히 묻고 모두 받아적었다. 그리고 내 입 속을 좀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고 하더니 조직검사가 필요한 것 같긴 하단다. 근데!! 조직검사를 위한 예약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너무 끔찍한 소식.
그냥 오늘 조직검사 하면 안 되나요?
오늘은...초진 보는 분들만 보는 날이라...뒤에 기다리는 분들도 너무 많아서 안 됩니다.
조직검사를 위한 예약은 다시 또 한달 뒤였다. ㅎㅎㅎ
나는 12월이 되어서야 조직검사를 할 수 있었고(참고로 조직검사 하고 하루이틀은 엄청 조심해야했다. 일주일 내내 통증은 조금 있었고...어쨌든 칼을 댄 거라 ㅠ) 검사 결과 병명이 나왔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병명.
그 이름이 바로 편평태선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보.
이건...고혈압이나 당뇨처럼 만성 질환이라 완쾌의 개념이 없어요...
네....?
아 정말 그 앳된 레지던트 앞에서 눈물 쏟을 뻔했다. chan도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기에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정말 뭔가가 무너지는 거 같았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김치와 라면과 닭볶음탕과...기타 그 모든 맛있는 것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이게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레지던트는 그래도 나 정도면 심각한 상태가 아니고...이건 위중한 질병은 아니라며...내가 아직 젊은(?)편이라 치료하면 매운 것도 통증 없이 먹으며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더 치료하며 지켜보자고 하는데 어쨌든 병이 사라지지 않으니 언제든 내가 나이 먹고 몸이 좀 약해지면 먹는 걸 조심해야 하는 거니. 평생 먹는 걸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힘들었다. 지금도 힘들다. 이걸 받아들이며 사는 게.
암튼 앞으로 계속 가져가게될 새로운 질병 하나를 얻은...만 37세가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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