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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용품을 하나씩 사들이기 전에 글램핑을 가보자는 생각을 드디어 실행으로 옮겼다.
우리가 다녀온 곳은 가평에 있는 클럽레스피아.
집에서 1시간 반 이내의 거리라서 부담이 없었다.
3시 입실인데 2시 반쯤 도착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히 요기.
서울우유에서 이런 밀크티가 나오는 줄 처음 알았네. 보라색에 꽃 들어간 디자인이 예뻐서 한 번 마셔보았다. 나쁘지 않은 정도였어...
3시쯤 체크인하고 입실.
예약할 때 고기 숯이랑 화로에 장작을 같이 했더니 숯이랑 토치랑 장작 한 묶음이랑 해서 체크인할 때 주심.
우리 숙소가 한 층(?) 위에 있는 곳이라 전경은 좋은 편이었다.
이 날 서울은 공기가 안 좋아서 걱정했는데 가평에 오니 공기도 좋고 탁 트여서 참 좋긴 좋더라. 하지만 서울보다 춥기도 추웠음. 네다섯시 되니까 슬슬 몸이 차지면서 난방을 위해서라도 밥을 먹어야하나 싶은 정도.
고양이도 있고...
뭐 나랑 아는 사이처럼 부르니까 오는 이 녀석은 뭔가 싶었다.
조금만 만져주니까 발라당 누우면서 애교부리는 거 봐. 이 요망한 것.
잠깐 앉아서 풍경을 보고있는데 옆에 또 쫓아와서 같이 내려다본다.
숯불에 불 붙이면서 밥 준비하는 걸 보더니 아예 텐트 안에 들어가서 지켜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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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텐트 안에 보면 알겠지만 내부 시설은 영...쾌적과는 거리가 멀다. 텐트 안 쪽은 사실 정말 맘에 안 들어서 사진도 이거밖에 없음. 안 쪽으로 버너랑 식기류랑 냉장고가 있었는데 식기류는 좀 찝찝해서 개수대로 가져가 먹기 전에 한 번 싹 씻었고, 나중에 보니까 딱 하나 있는 냄비는 안 쪽에 누가 라면 먹고 설거지를 안 해놨는지 더러웠다...
그리고 밑에 깔린 저 노란색 돗자리는 또 뭐야...
게다가 어디는 좀 찢어졌고 어디는 모기향 모양대로 새까맣게 탄 자국...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베큐니까...
숯에다가 열심히 불을 붙이고 매캐한 연기를 조금 참으면 이렇게 고기를 구울 수 있는 불이 잘 타게된다.
양 옆으론 감자랑 양파를 깔고
가운데에 고기...한우 치마살...
어우 저 반짝거리는 거 봐
치마살 150그람에 삼겹살 550그람 정도를 사갔는데
치마살은 정말 그냥 한 두 번 젓가락 왔다갔다 하니까 사라져버린 느낌.
이제 올라가는 삼겹살...
chan이 나보고 무슨 고기를 700그람이나 샀냐고 엄청 탐욕부리는 사람 취급하더니
순식간에 다 사라지더만...
사실 여기에 고기 종류 바꿔서 1-200그람 더 있었더라도 다 먹었을 거 같다.
한창 애교 부리던 이 녀석도 밥 먹는데 당연히 옆에서 척 앉아 기다리길래
모른척 할 수 없으니까...
삼겹살 생고기를 조금씩 잘라 줬더니 눈이 똥그래져서는 덥썩덥썩 잘 받아먹더라.
그거 제주도 흑돼지야...너에게도 맛있었으면 좋겠구나...
고기 몇 점 먹더니 배가 찼는지 슥 사라지더라.
그리곤 다시 나타나지 않았어...
살짝 배신감을 느꼈지만 금방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쟤는 알고 있는 거야. 우리가 내일이면 떠날 거란 걸.
떠나는 줄도 모르고 와서 정 붙이고 밥 얻어먹었고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몇 번이나 상처를 받고는 깨달은 거겠지.
....
센치한 마음을 달래며 바로 화로에 불을 지폈다.
불 보고 앉아서
따듯한 핫초코도 마시고
장작도 틈틈이 한두 개씩 넣어주고
얘기도 하고
고구마도 굽고
그리고 잤다.
불 꺼지기 시작하니 너무 추워서 씻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양치만 겨우 하고.
다행히 침대에 전기장판이 있어서 그거 최대로 켜고 자니까 잘만했다.
얼굴은 계속 차가웠지만...
잠자리가 불편해서 결국 아침 일찍 6시 조금 넘어서 깼다.
근데 아침 풍경이 너무 좋더라.
산에 걸쳐있는 구름도 보이고 고요하고 평화롭고
산내음도 나고
토스터나 프라이팬이 없어서
토치로 구워먹는 빵...
앤트러사이트에서 사간 드립 커피를 마셔보려는데
전기포트가 없으니 냄비에 물을 끓여 국자로 내리는 커피
그렇게 어렵게 아침을 먹는 중에
어제랑 다른 손님들이 찾아왔다.
두 마리의 더 어린 손님.
똥꼬발랄하게 둘이서 나무도 타고 막 놀다가
내가 호밀빵을 잘라 던져주자
눈이 똥글똥글해져서는 받아먹는다.
그거 내가 좋은 재료로 직접 구운 호밀빵이야...너네에게도 맛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럼 안녕!
*
총평
기대했던 바베큐와 장작불은 정말 좋았다. 숯에 직접 구워 먹는 고기는 진짜 꿀맛이었고 장작불은 몇 시간을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별이 많았던 밤 하늘도 좋았고. 코끝 찡하게 차갑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바라보는 고요한 아침 풍경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 귀여운 고양이들은 덤...
하지만 너무 추웠다. 아침 먹고 추위를 견딜 수 없어 8시가 되기도 전에 짐 다 꾸리고 나왔으니...(사실 이건 좀 더 따듯하게 입고, 추가금을 내고 난로를 피우면 어느정도 해결될 수는 있다.)
그리고 위에 언급했지만 텐트 안에 시설이 너무너무 쾌적하지 못했다. 여기서 정말 마이너스 백점...
또 하나 힘들었던 건 화장실과 개수대를 매번 왔다갔다 해야한다는 거. 이게 생각보다 되게 불편하고 힘들더라.
혹시나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싶을까봐 저녁 먹을 때부터 물을 많이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해야했다.
식기나 과일 야채같은 것도 혹시 빼먹고 가면 또 내려가서 다시 씻어와야하는 번거로움도 그렇고...
장점도 너무 뚜렷하지만
단점도 너무너무 뚜렷하여...
아마 장비를 갖춰가며 캠핑을 가는 일은 없지 않을까...싶다.
**
번외
아침에 다 철수하고 길을 나섰는데 근처에 꽤 괜찮아보이는 숙소겸 카페겸 공원겸...뭔가 많은 시설이 있는 곳(이름은 비밀...)이 있어서 살짝 들려봤다.
근데 여기가 너무 괜찮은 거...
아침 8시부터 하는 카페에 왔더니 사람도 없고 조용하고 따듯해...
독채로 있는 숙소가 어떻게 생겼나 좀 걸어봤는데
너무너무너무 예쁘고 깔끔하고 괜찮아...
숙소 뒤로 이어지는 산길도 완전 숲속 느낌 나면서 예쁘고...
다람쥐도 있어...
참고로 위에 숙소가 우리 갔던 글램핑 숙소랑 가격차 10만원 이내...
이럴줄 알았으면 여길 왔을 거라고 얘기하면서...
결국 다음주에는 여길 와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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