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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었다 느끼는 일들
30대 초중반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나이를 잘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다. 내가 30대 후반이고 곧 40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싫어서 ㅎㅎ
어릴 땐, 그래 자연스럽게 나이들어 가야지. 부정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면서. 나이에 맞게 성숙해져 가야지. 라고 마음 먹었었는데 ㅋㅋㅋㅋ
성숙은 커녕 나이 먹은 걸 생각도 하기 싫다.
그럼에도 자꾸만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은 일들...
1. 게임이 재미가 없어짐
나도 정말 한 게임 했었는데. '한게임' 테트리스부터 시작해서 디아블로랑 와우에 오버와치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은 왠만하면 해봤고 그 중 몇 개는 빠져들어서 엄청 열심히 했었는데. 1-2년 전부터인가...게임이 예전만큼 재미가 없는 거다. 최근 가장 빠져들어서 재미를 느꼈던 건 동물의 숲과 아노 1800이고 그 이후론 이거저거 깔짝거려봤지만 별로 재미가 없다. 분명 잘 만든 게임이고 예전의 나였으면 엄청 재미있게 했을 법한 게임들이 모두 그냥 시들하다. 게임도 시간을 들이고 품을 들여 캐릭터를 키우거나 마을을 키우거나 하면서 그 단계단계가 즐거운 것인데 어느 순간 그냥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싶은 거다. 슬프더라.
2. 가던 곳만 간다
꽤 여러 번 시도를 해봤는데 우리 맘에 드는 고기집을 찾기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다. 집 앞에 자주 가는 드럼통은 굉장히 만족스럽지만 저녁 시간에 가면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러워서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 했다. 홍대랑 연희동 등 여기저기 몇 곳 가봤는데 다 고기는 적당히 맛있지만 다시 가고싶단 생각은 들지 않더라. 우리가 따지는 게 그렇게 많지 않은 거 같은데...생각보다 찾기가 너무 힘들다. 맛은 첫번째고 두번째는 청결인데 여기까진 만족스러운 집에 꽤 많다. 문제는 노래와 소음. 왜 이렇게 밥 먹으면서 가슴 조이며 눈물 짜내는 사랑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인지...난 정말 모르겠다. 또 너무 시끄러운 집도 피하는 편이다. 둘이 밥먹으면서 대화하기가 힘들어서...근데 이 노래랑 소음까지 해결되는 곳이 정말정말 찾기 힘들다는 것이 놀랍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곳을 시도하기가 자꾸 꺼려지고 우리가 두 번 이상 다니면서 맛과 청결 상태와 소음 상태를 확인한 곳은 단골 리스트로 올라 주로 계속 여기만 다닌다. 중국집은 여기, 고기는 여기, 설렁탕은 여기...
여전히 새로운 곳을 시도는 하지만 가던 곳을 가는 비중이 훨씬 늘어났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만 같아 벌써 늙은 느낌...
3. 옷이 달라짐
이건 이렇게 된 지 꽤 되었는데...ㅎㅎ 짧은 상의는 무조것 아웃이다. 배가 드러나면 무조건 안 됨. 한 여름에도 이건 안 된다. 젊을 때만큼 뱃살에 탄력있는 것도 아니고 근육을 만든 것도 아니라 일단 미관상 좋지 않은데다 배가 드러나면 배탈이 난다...
꼭 맞는 옷도 잘 안 입게 되었다. 한 때 스키니진도 즐겨 입었었는데 이젠 거의 안...못 입는다. 그렇게 하루종일 하체를 조이는 옷을 입고나면 저녁에 피로도가 너무 심하게 올라오고 그 옷 입고 나가서 밥이라도 먹으면 높은 확률로 또 배탈이...
굽 있는 신발 신는 날이 1년에 손에 꼽게 되었다. 발이 불편한 걸 점점 못 견디겠어서. 신발도 사는 브랜드에서만 산다. 예전엔 비싼 거 싼 거 안 가리고 예쁜 신발 있으면 엄청 사들였는데 이젠 암만 이뻐도 발이 아프면 내가 안 신는다는 걸 확실히 알기에 구매까지 이어지질 않음. 꼭 굽 있는 걸 신어야하는 상황이면 적어도 늘 사는 그 브랜드의 통굽을 신거나 부츠를 신거나...아니면 뾰족 구두에 얇은 힐을 꼭 신고싶으면 단화 하나를 챙겨서 나간다. 아...정말...7-8cm 굽 신고 1호선 타고 하루종일 학교 캠퍼스 돌아다니던 20대의 나 어디로 갔니?
3. 집밥이 중요해짐
이제는 확실히 밖에서 먹는 밥과 집밥의 차이를 느낀다.
사먹는 것도 맛있는데 연속으로 2-3번 이상 먹으면 속이 편치가 않다. 집에서 내 손으로 해먹어야 속도 깔끔하고 만족스러움.
그래서 어려운 게 만두다. 다들 ㅂㅂㄱ 만두 맛있다는데...난 암만 먹어봐도 너무 별로...
내가 냉동 식품 중에 입맛 까다롭게 구는 것이 돈까스와 만두인데
돈까스는 여차하면 내가 만들 수 있을만한 레벨인데 만두는 정말이지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 속상하다. 게다가 난 원래 만두를 좋아함. 집에서 만든 만두는 정말 한 번에 7-8개도 먹을 수 있는데.
다 같이 만두 만드는 모임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ㅋㅋ
4. 조카가 새해에 전화함
올해 처음 조카가 새해에 전화해서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 맨날 어른들한테 덕담만 들었지 어린 사람에게 인사 받는 건 처음인데 너무나 어색함. 근데 어쩌겠는가. 인사를 하는데...받아줘야지 ㅠㅠ
전화 끊고 카카오페이로 용돈 주니까 만수무강하시라고 답장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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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었다고 느끼는 것 중 으뜸은
집을 샀다는 거!!!!!
세상에 우리가 집을 사다니!
은행에서 이렇게 큰 돈을 우리에게 대출을 해주다니!
이렇게 큰 돈으로 부동산을 사다니!
셀프 등기 한다고 스스로 등기소에 가서 막 이런저런 어려운 용어가 쓰여있는 서류를 왕창 들고 가서 접수를 하다니!
(참고로, 우리는 대출을 받는 덕분에(?) 셀프 등기가 좀 수월했다. 대출 덕분에 은행도 우리 서류가 잘 제출되는 것이 너무 중요한 입장이 되니 은행에서 나온 법무사 분이 부동산에서 한 번, 등기소에서 또 한 번 서류를 확인해 주시더라. 다행히 문제되는 것 없이 한 번에 접수했다. 셀프 등기 좀 어렵지만 정신 잘 차리면 할만함. 대출까지 받는다면 더더욱 할만함.)
운 좋게도 우리가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을 사게되어 이사할 필요 없이 그냥 그대로 지내면 된다.
똑같은 집에 사는 건데
전세로 살 때와 지금 마음이 너무 다르다.
마음이 편안하고
괜히 벽 만지면서 여기가 내 집이구나 싶고
집안 구석구석 더 가꾸거나 바꾸어야할 것들이 생각나고
망가져있어도 신경쓰지 않았던 것들을 이젠 다 고쳐야겠구나 싶고
마음같아선 수리도 한 번 싹 하고싶지만...
집 값에다 취득세와 부동산 복비 포함 너무 많은...지출을 한 관계로
수리는 당분간 보류...
아직 등기가 우리 이름으로 나오진 않았다.
지난 금요일에 접수했으니 별 문제 없으면 이번주, 늦어도 다음주에 나오겠지.
그거 나오면 액자라도 껴서 걸어놔야하나 고민 중이다.
우리 엄마가 오랫동안 사용하는 비밀번호 네자리가 있다. 엄마 대신 아이디를 만들어줄 때나 예전에 엄마 카드 쓸 일 있을 때는 이게 무슨 뜻인지 물어볼 생각을 못하다가 최근에야 물어보게 되었는데
우리 가족이 목동 집으로 이사한 날이었다.
우리도 이 집을 산 것을 오래 기념하고 싶은데
이사라는 이벤트가 없으니
전세로 이사온 날, 계약서 쓴 날, 잔금 치른 날, 등기 문서 나오는 날....어느 날로 해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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