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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벌써 두 번째 토요일이다.
11월이 되면서 점점 겨울이 다가오고 있구나 싶은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
오후 4시면 어둑어둑해지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어느 날은 아침부터 구름낀 하늘로 하루종일 어둑어둑한 날들도 있다.
영국다운 우울한 겨울 날씨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어떤 날은 장보고 와서 맛있는 걸 만들고 chan과 함께 먹으면서 즐거웠다가
어떤 날은 몇 시간을 구직 사이트를 뒤져 보고 이력서를 뿌리다가
어딘가에서 전화나 메일이 오면 또 잔뜩 긴장해서 답을 해주고
또 답을 기다리다가 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몇 주를 기다렸던 무선 인터넷은 결국 깔지도 못했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전화선이 알고보니 작동하지 않는 거였다..결국 인터넷 회사에서 케이블을 가져다 설치해줘야 하는데 그럴려면 지금부터 또 다시 약 1달을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인터넷 서비스는 회사마다 최소 12개월 또는 18개월을 계약해야 하는데..지금 사는 집은 1년 계약인데..또 1달을 기다려야 한다면....12개월짜리를 계약한다고 해도 마지막 1~2달은 그냥 쓰지도 않는 인터넷 비용을 쌩으로 지불해야 한다. 후아...진짜 이게 뭘까? 싶어서 그냥 무선 인터넷은 설치하지 않고 대신 핸드폰 퍼스날 핫스팟을 이용해서 쓰기로 했다. 영화나 드라마 다운받는건 chan이 학교에서 해오기로 했고...조금 불편하겠지만 뭐 어쩌겠나..)
또 최근에 면접본 곳에서 알게 되었는데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일을 하려면 National Insurance Number를 지급받아야 한다고. 그래서 집에와서 전화해보니 뭐 이런저런 절차를 거칠거고 총 프로세스에 걸리는 시간은 6~8주 정도라고.
그럼 앞으로 약 2달 가까이 일을 못하는 거네?
하면서 또 패닉
너무 무기력해서 그냥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또 다음 날에는 하루종일 패배감에 쌓여 내 스스로가 한심하다가 짜증나다가 혼자 와인 마시고 울다가-
새로운 사회 시스템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는 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 설치에 걸리는 시간
외국인으로서 일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
은행 구좌를 열기 위해 필요한 서류와 걸리는 시간
병원 등록
전기/가스 회사의 요금제
도시 구역마다 다르게 매겨지는 council tax
다 여기에서 살아가기에 너무 중요한 것들인데
나에겐 너무 낯설다.
뭔가가 조금이라도 꼬이거나 하는 날이면
이제 곧 큰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고 그게 무기력과 패배감으로 이어져 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런 상태로 돌아가봤자 결국 더 깊은 무력함과 패배감으로 괴로울 것은 너무 뻔한 일이다.
그냥 여기에서 이 상태를 견디고 잘 극복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chan은 이제 집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왠만하면 자기가 학교 가는 날에 같이 나와서
미술관을 가든 박물관을 가든 서점을 가든..
그렇게 밖에서 시간을 조금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제시했고 나도 동의했다.
다음 주 부터는 꼭 집에 있어야 하는 날이 아니면 의식적으로라도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해 보려고 한다.
런던의 첫 겨울
그렇지 않아도 날씨도 우울하다고 악명높은 이 곳에서
벌써부터 마음이 한없이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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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노홍철 음주운전 가능성-
무한도전 자진 하차
어제 밤 늦게 이 소식을 접하고 정말이지 너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거의 10년 가까이 한 에피소드도 빠지지 않고 봤던 무도빠로서
무한도전은 그냥 한 예능 프로가 아니었다.
잘 모르겠다.
뭐였는지.
일단 몇년 전부터 공중파에서 유일하게 챙겨보는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지같은 느낌도 있는 것 같다.
별로 재미가 없는 날에는 그걸 욕하기 보단 걱정하게 되는.
MBC 노조 파업을 하며 몇 개월의 공백도 이겨냈고
예능프로임에도 가끔씩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꼬집는 장면을 절묘하게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정권의 미움을 받았고
그에 따라 국내에서 거의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임에도 제작비를 지속적으로 삭감당했고
출연자들도 출연료를 자진삭감했고
김태호 PD는 촬영이 없는 날이면 스폰을 받기 위해 이곳저곳 광고주들을 만나 영업을 하고 다녔고
..
뭐 말하자면 한 두 개가 아닌 사연을 품은
그렇게 멋진 사람들이 눈물나는 마음으로 유지해오던 프로였다.
하나의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했고 한 에피소드도 빠뜨리고 보지 않은 애청자라는 사실이 그들의 싸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자부심까지 느끼는 정도였다.
특히나 영국에 와서는 낯설고 우울한 일상 속에서 무한도전은 오래 알고 지낸 친근하고 익숙한 친구 같았고
깔깔대고 웃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주어서 최근 이 프로에 대한 의미가 더 커지기도 했다.
이런 애정을 품었던 프로라서
그 주요 멤버중 하나인 노홍철의 하차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나에게 가져다 주는 상실감은 어마어마했다.
나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아직 법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정도의 수치인지 아닌지는 기다려봐야 아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뭐가 되었든..
어떤 식으로든..
그래도 조금만 더 버텨 주었으면 좋겠다.
내년이면 10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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