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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마지막 주말
7월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고 런던에서 보낸 첫 여름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사실 여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에 비하면 선선한 날들이었어서 아직도 여름이 이제 정말 오려나? 싶을 때가 있는데. 해가 지는 시간도 점점 빨라지는 것을 보면 이 여름같지 않던 여름도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가져온 핫팬츠랑 나시티는 결국 한 번도 못입고 여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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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본 동네 펍
처음 이사와서 동네도 익힐겸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우리 동네 근처에는 그 유명하다는 영국의 로칼 펍 하나가 없어서 좀 아쉬웠었다. 튜브역 근처에 아주 작은 펍 하나가 있는데 너무 허름하고 지저분해서 별로 들어가고 싶은 외관도 아니었던데다 가끔 보이는 펍 안쪽을 보면 정말로 동네 양아치나 술주정뱅이 할아버지들만 득시글한 것 같고 어둡고 해서 아예 열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 빌어먹을 유태인 종교 마을은 그럴듯한 펍도 하나 없구나-
런던 여행 블로그만 봐도 예쁘고 멋있는 펍들이 동네마다 꼭 하나씩 있던데 이 동네는 그것마저 없구나-
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chan이 공원 근처에서 꽤 괜찮아 보이는 펍을 발견했다고 했다. 자세한 위치를 알아보니까 버스로 5 정거장. 걸으면 약 30분. 동네 펍이라고 부르기에 좀 먼 느낌은 있지만. 갈 때는 버스타고 올 때는 걸어오면 딱 적당하겠다 싶었다.
금요일은 하루 온종일 비가 주르르륵 내렸고 토요일은 맑았다. 햇살이 좋아서 나갈까 싶다가 좀 늘어지길래 어쩔까 하면서 뒹굴거리다가. 일기예보를 보니까 일요일엔 또 하루종일 비가 내린다고 해서(여기는 일기예보가 꽤 잘 들어맞는 편이다.) 그럼 오늘 정도는 밖에 나가줘야 할 것 같아 새로 발견한 펍에 가보기로 했다.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1분 거리에 있는 꽤 큰 규모의 Old Bull and Bush 라는 펍. 1721년부터 있었다고 하니....무려 약 300년이 된 펍....후아 진짜 어마어마하다.
나는 아직도 위를 좀 관리해줘야 하는 관계로 민트티를 시켰고 chan은 밀크티를 시켰다.
근데 우리 빼고 대부분은 맥주나 와인을 한 잔씩 하고 계시더라. 꼬맹이들 있는 가족도 오고 노부부도 오고 할아버지 혼자서도 오고. 식사 하는 사람도 있고 술 마시는 사람도 있고. 밥만 먹고 가는 사람도 있고 맥주 몇 잔씩 마시면서 혼자서 오랫동안 앉아서 책보는 사람도 있고.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크게 시끄럽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고. 왠지 펍의 역사와 함께 300년이 된 게 아닐까 싶은 묵직한 나무 테이블도 맘에 들고. 지금까지 영국에서 가봤던 카페나 레스토랑을 통틀어 제일 마음에 들었다. chan에게 이 펍에 걸어서 왕복으로 다닐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또 펍 바로 앞이 또 큰 공원이라서 살기에 매우 좋은 동네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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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펍에 가는 것이 일상의 하나가 되어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집을 고를 때 근처에 괜찮은 펍이 있는지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고 한다. 만약 집 근처에 위에서 내가 말한 그지같은 펍밖에 없다면 근처에 집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는 거다.
뭐 여튼,
내부는 이런 모습
그리고 집에 갈 때는 공원을 가로질러서 걸어서 갔다.
런던의 공원은 언제나 옳다. 정말이지 옳고 또 옳다.
드디어 셀카 '봉'이 안 보이게 찍는 방법을 익혔다.
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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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아이고 요 며칠 이것땜에 정말 미치겠다. 무슨 열병을 앓는 10대 소녀같이 말랑말랑해져서 말이지. chan도 이렇게까지 감정이입하면서 드라마 보는 거 정말로 오랜만에 본다.
초반에 삼천포랑 해태가 과 단체미팅 나갔다가 제비뽑기 해서 여자랑 2:2로 KFC에 갔는데 비스킷 시켜달라는 말에 비스킷인데 한 사람당 10개씩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면서 KFC 비스킷 40개를 주문하는 장면에서 진짜 완전 빵 터졌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신성하게 아이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이유는....
바로 이 매직아이 보겠다고..........;;;
이게 칠봉이가 매직아이 못 보는 나정이한테 한 번 봐보라고 하면서 줬던 건데 나정이는 며칠 동안 아무리 눈을 사팔로 떠도 끝끝내 못보고 말았다. 근데 그 화가 끝나면서 이 매직아이를 화면 가득 보여주길래 스톱시켜놓고 둘이서 이걸 봐보겠다고. 도대체 칠봉이가 준 게 뭐냐고 하면서. 또 매직아이는 정면으로 봐야한다며 차례대로 이렇게 무릎까지 꿇고 앉아서 진지하게 모니터를 째려보고 있었다. 결국 chan은 봤고 나는 못 봤는데 하트라고 하더라. 나도 옛날에는 잘 봤던 거 같은데 오랜만에 보려니까 죽어도 안 보이데.
일요일인 오늘은 일기예보대로 하루종일 비가 주륵주륵 내린다.
집에 콕 박혀서 아침 점심 저녁 야무지게 챙겨 먹고 뒹굴거리고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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