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포스팅에 언급했듯이 얼마 전 회사 파티를 다녀왔는데. 그 날 1시간을 같이 걸으며 얘기를 나눴던 사람이 있었다. 나보다 1달 정도 뒤에 들어온 또 다른 프리랜서분(이하 S). 역시 나보다 어린...-_-;
같이 걸으며 자연스럽게 내가 최근 위궤양을 앓았어서 술도 커피도 못 마시고 있다는 얘기를 하게됐다. 그 말을 듣자 S씨는 왜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셨나? 라고 물었다.
...헛. 그랬나?
아무렇지도 않은 이 질문이 뒤통수를 딱 치는 것 같았다.
나 사실 위궤양을 앓고 식단 조절을 하면서도 계속 내가 뭔가를 잘못 먹고, 안 좋은 걸 먹고, 불규칙하게 먹고..아무튼 먹는 게 잘못되어 걸린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원인이 스트레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던 거다.
아무튼 계속 걸으며 또 자연스럽게 chan의 취업과 10월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 등 여러 심란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10월은 집이 많이 나오는 시즌도 아니고..게다가 단기로 3개월만 살 집은 더더욱 구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뭐 이런 이야기들. 그리고 근 1년간 런던 외곽 어디 짧게라도 여행도 다녀온 적도 없다. 외곽은 커녕 런던 시내도 아마 관광객들보다 못 봤을 거다. 라는 이야기를 듣자 S씨는 나에게 정말로 스트레스 때문에 위궤양이 걸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과 이사, 집 구하기. 어느 것 하나 간단한 일이 아닌데 이거 때문에 늘 스트레스 받고 있었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고. 주말에 시간내서 어디라도 잠시 다녀오고 기분 전환을 좀 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니 너무 생각하지 말라는 말도.
대화를 하면서 나랑 친해질 것 같거나 나랑 코드가 맞는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던 사람인데..게다가 해준 이야기는 그냥 당연하고도 평범한 이야기였는데도. 이상하게 이게 되게 맞는 말 처럼 확 와닿으면서 이런 말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스트레스가 위궤양의 원인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사실 여기 와서 과자나 군것질이 좀 늘긴 했지만 한국에서보다도 더 많이 집에서 밥 해먹고 신선한 야채랑 과일은 훨씬 더 많이 먹었는데. 갑자기 위궤양에 걸린 것이 내 식습관 때문이라는 게 좀 그럴듯하진 않다.
레스토랑 그만 두면서 사실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았고
남의 집에 살면서 나중에 디포짓 다 까일 것 같은 걱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본으로 하며 살았고
chan의 취업도 1년 내내 업앤다운 하며 걱정하고 있는 일이었고
10월에 집 구하는 것도 생각만 나면 머리가 묵직해서 답답하고.
10월에 집 나가면서 집주인이랑 디포짓 가지고 신경전 벌일 일도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생각해보니 1년간 정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던 것 같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한국에서보다 기본적으로 끌어안고 살아가는 심각한 걱정거리들이 많이 있었다.
휴, 미래가, 당장 2개월 뒤, 5개월 뒤의 상황이 불분명한 상황에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나처럼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대비하는 것에 훈련된 사람은 진짜 압박의 강도가 엄청난듯.
물론 여기에는 대전제가 붙는다. 경제적으로 빠듯한 상황에서-라는
사실 이 모든 스트레스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긍정적인 것은,
사실 요즘엔 위궤양 이것도 내가 평생 안고 가야하는 거구나. 평생 식단 조절하며 살아야겠구나 했었는데.
위궤양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면 상황이 바뀌어 스트레스를 덜 받게되면 먹는 것에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 막 커피도 마실 수 있고 뭐 그런...
작은 것에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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