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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의 생일
1월 19일은 chan의 생일이었다.
(만으로) 32번째 생일을 맞은 chan.
나는 그 중 여섯 번의 생일을 그와 함께 했다.
이번은 결혼 후 맞는 첫 생일.
나는 18일 밤에 미역국을 끓이고 딸기 롤케이크를 만들었다.
원래는 미역국만 끓이려다가
요즘 고생하는 chan이 안되보이기도 하고
chan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일인 딸기를 동네 슈퍼에서 사다놓기도 했고,
또 내가 지금 쉬고 있으니까,
언제 이렇게 해주겠어?
하는 생각들이 합쳐져 결국 밤 11시에 딸기 롤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벌린 것.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서 그대로 잘 따라하고 있었는데..
아직 베이킹에 초짜인 나는 머랭 만들기에 실패하고 만 것.
머랭은 계란 흰자랑 설탕을 미친듯이 저어서 크림 형태로 만드는 건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농도가 한 번 저으면 저은 그대로 형태가 유지될 정도로 걸쭉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거품기로 들어봐도 안 떨어지게.
내가 핸드블렌더 꺼내는 게 귀찮아서 수동으로 젓다가 팔 근육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두 세 번쯤 느꼈다.
결국 찬장에서 핸드블렌더를 꺼내 거품을 냈다. (이럴 때 보면 난 참 미련하고 무식한 인간인가 싶고 그렇다..)
근데!
핸드블렌더가 돌아가는 방향이랑 내가 손으로 휘저은 방향이 반대였던 것!
(머랭은 같은 방향으로 돌려줘야 저 위에 사진처럼 성공적인 크림이 된다.)
핸드블렌더로 아무리 저어도 카페라떼처럼 위에만 거품이 무성하고 아래는 그냥 액체 상태..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집에는 계란이 없는데,
사러 나갈까?
근데 지금 벌써 11시 반.
그냥 만들지 말까?
판 벌린 게 너무 아까운데..
게다가 벌써 팔 한쪽을 버렸는데 -_- 결과물이 없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냥 실패한 머랭으로 만들어도 먹을수만 있으면 되지 뭐.
하여 강행한 딸기 롤케이크
중간중간 샷은 오른팔이 떨려서 찍을 수가 없었다.
완성된 샷만 겨우.
잔쯕 기대에 차서 끝에 한 조각 잘라보았는데
아..
아.. 이거 뭐지?
딸기 주변이 왜 저렇게 공기가 많아?
내가 본 완성된 케이크 단면은 빵이 딸기 주변을 꽁꽁 싸맨 모양이었는데.
하아..난 정말 베이킹에는 소질이 없나봐..
결국 롤케이크만 찍으면 너무 초라해보여서 뒤에 초로 배경을 장식했다.
이때쯤 난 이미 체력이 1% 남은 상태.
밤 12시에 위에 사진이랑 생일 축하 문자를 chan에게 보내놓고 뻗어버렸음.
19일 생일 당일
결혼 후 첫 생일이라며 우리 가족들(엄마, 아빠, 큰오빠네, 작은오빠네)이 모두 모여 같이 점심 한 끼를 하기로 했는데
1월달 내내 프로젝트라고
주말도 없이 단 하루도 못 쉬고 매일 새벽에 퇴근하는 비인간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chan을 위해
결국 chan의 회사에서 가까운 강남역 노랑 저고리에서 모두 모이기로 했다.
어제 12시 반에 모여 밥 먹고 케이크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chan은 다시 회사로...
이건 내가 떨리는 오른팔을 부여잡아가며 예술혼을 담아 생일 카드에 그려준 chan의 생일 케이크.
아무튼,
이번처럼 크게 생일이라고 이것저것 한 적은 처음이다. 연애할 때부터 시작해서.
앞으로도 이렇게 해주기는 힘들듯.
기억해라, 너의 32번째 생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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